후흑학(厚黑學)
실200413 후흑학(厚黑學)
역사에 이름을 남기려면 얼굴이 두껍든가, 뱃속이 시커멓든가 둘 중 하나가 돼라. 이렇게 말한 사람은 중국 신해혁명 당시 동맹회의 일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던 풍자가 이종오(李宗吾)였다. 그는 나중에 ?후흑학(厚黑學)을 창시하고 스스로 교주가 됐다. 그에 따르면 후흑에도 단계가 있다.
1단계는 낯가죽이 성벽처럼 두껍고 속마음이 숯 덩어리처럼 시커먼 것이고,
2단계는 낯가죽이 두꺼우면서도 단단하고 속마음이 검으면서도 밝은 것이다.
그러나 가장 고수는 낯가죽이 두껍지만 형체가 없고 속마음이 시커멓지만 색채가 없는 경지이다.
그는 '하(夏)․ 은(殷)․ 주(周) 이래 지금까지 역사상 활약한 제왕 호걸들치고 후흑이 아니고서 성공한 사람이 한 사람이나 있었던가'라고 묻는다.
그런 이종오가 얼굴 두꺼운 인물의 대표선수로 꼽은 것이 삼국지의 유비였다. 유비는 이리저리 쫓겨 다니고 남의 처마 밑에 얹혀살면서도 전혀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다. 특히 그의 대성통곡은 사람을 움직이는 무기였다.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봉착할 때마다 사람들을 붙잡고 체통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 위기를 벗어나려 했다.
(김태익)
“삼국지 이야기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황건적의 난 시기에 나타난 수많은 군웅 중에서 미약한 기반으로 시작했으며 그중에서 살아 있을 때 황제의 자리에 올라 후계자에게 대업을 전한 인물은 유비 단 하나뿐이다.(나무위키)”
유비는 얼굴이 두꺼운 사람이었지만 속마음이 시커멓지는 않았다. 이것이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는 덕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