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해리 S. 트루먼 미국대통령

3406 2020. 9. 11. 10:55

트루먼 대통령은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총사령관 자격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해 끝까지 항전하는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 우리의 독립을 가져다주었고, 이승만 박사와 더불어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탄생의 계기를 마련했으며, 그 후 6.25가 발발 하자 즉시 파병의 결단으로 미군을 위시한 유엔군의 결집을 주도하여 대한민국을 방어했던 우리의 은인이다.

트루먼 대통령이야 말로 참다운 청백리의 삶을 실천했던 훌륭한 정치인의 표상이라는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 해리 트루먼과 그의 부인 베스 트루먼은 남다른 대통령이었다. 그는 32명의 전임 대통령들에 비해 미국 역사상 매우 중요한 결정들을 가장 많이 내린 대통령이다. 그렇지만, 그의 위대함은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그가 보여준 행동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그가 사망할 때 갖고 있던 유일한 재산은 자신이 살았던 미주리에 있는 집이 전부였다. 그의 집은 그의 부인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그들이 백악관에서 살 때를 제외하고는 평생 이 집에서 살았던 집이다.

그가 대통령에서 물러난 1952년 그의 수입은 미육군 연금으로 받는 연 13,507불이 전부였다. 그가 자기 돈으로 우표를 사서 직접 침을 발라 편지를 발송하는 사실을 안 의회가 나중에 소급해서 ‘수당’을 지급하여 연 25,000불의 연금을 받게 되었다.

그의 후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취임하자 트루먼 대통령과 그의 부인 베스는 미주리에 있는 자신의 집까지 직접 운전해서 갔다. 그들을 따르는 경호원도 없었다.

고액의 급여를 받는 회사 경영자의 자리를 제안 받았을 때 그는, “당신들이 원하는 건 내가 아니라 대통령이란 직책이오. 하지만 그 자리는 내 것이 아니라 미국 국민들의 것이고, 파는 자리가 아니오” 라는 대답으로 제안을 거절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인 1971년 5월 6일 미국 의회가 그의 87세 생일을 맞아 ‘영예의 메달’을 수여하려고 했지만 그는 “저는 의회의 메달이든 그 어떤 상을 받을만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라며 수상을 사양하는 회신을 의회에 보냈다.

“내 인생에서의 나의 선택은 시골 팝에서 피아노 연주자가 되거나

정치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을 말하자면 이 둘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라는 해리 트루먼의 얘기가 사실이 되었다.

 

“우리는 그를 본받았어야 했습니다.” 라고 많은 사람이 그를 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