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취하지 말라’

3406 2020. 12. 7. 11:39

조선 시대에 옷을 잘 짓기로 이름난 이가 있었다. 옷을 지으러 가면 딱 한 가지만 물었다고 한다. “과거 급제를 언제 했습니까?” 급제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선비라고 하면 앞섶을 길게 하고 오래되었다고 하면 뒷섶을 길게 했다. 왜 그랬을까? 이제 막 급제한 젊은 선비는 자신감 내지 자만심에 가득 차 어깨를 한껏 뒤로 젖힌 채 ‘이리 오너라’ 할 테니 앞자락이 올라갈 것이다. 그래서 앞 길이를 길게 했고, 급제한 지 오래되고 나이도 자신 양반은 허리가 앞으로 굽었을 뿐 아니라 겸손해졌을 테니 뒷자락이 올라갈 것을 예상해 뒤 길이를 길게 하는 것이다.

 

등산을 할 때 올라가다 넘어지면 손바닥이나 무릎을 조금 다치고 말지만 내려오는 길에 넘어지면 다리가 부러지거나 구르는 등 심각한 중상을 입기 쉽다.

‘취하지 말라!’ 짧은 이 문장, 오래전부터 새기고 있는 금언인데 어지러울 정도로 뉴스가 넘쳐 나는 요즘 큰일을 맡고 있거나 내려가는 길에 다다른 분들께 특히 전하고 싶다. 취하지 마시라. 한순간에 버려진다.

-동아광장/최인아-에서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