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의 DNA’가 없는 정권
춘추시대 제나라 명 재상 관중(管仲)은 ‘잘못을 숨기지 않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나라를 지탱하는 데 중요한 덕목이라고 했다. 국가를 영속케 하는 4가지 그물 줄(禮·義·廉·恥)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고, 두 개가 끊어지면 위태로워지며, 세 개가 끊어지면 뒤집어지고, 네 개가 끊어지면 멸망한다고 경고했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알면 뉘우치고 회개하게 된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반성도, 사과도 없다. 이 정권이 유독 사과에 인색한 이유다. “사퇴하라”는 야당 의원들의 면전에서 김 대법원장은 “더 나은 법원을 위해 한번 잘해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결핍된 ‘수치심’의 자리가 ‘탐욕’으로 채워지고 있다. “짊어진 짐을 함부로 내려놓을 수 없다”(조 전 장관), “흔들림 없이 책임을 다 하는 것이 저의 운명적 책무다”(추 전 장관), “(위안부) 할머니들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윤 의원). 숱하게 봐왔던 현기증 나는 데자뷔다.
체면과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있어야 신뢰가 싹튼다. 신뢰가 있어야 큰일을 도모할 수 있다. 나랏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는 지도층이라 할 집권세력이 앞장서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법을 어기고 거짓말을 하고도 수치심을 느끼지 못한다. 되레 장관·국회의원 같은 고위직에 오른다. 현란한 레토릭과 화장술로 대중의 눈을 속여 권력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의 마음을 얻진 못한다. 신뢰가 없으면 나라는 한 발짝도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게 관중의 경고다.
이정민 논설실장 (중앙시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