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윤 석열의 정치적 소명 의식

3406 2021. 3. 16. 09:52

윤석열이 검찰총장에서 사퇴한 후 야권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을 더 키우고 있다. 그가 정치하겠다고 한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 안 하겠다고 한 적도 없다. 그의 경우는 부정하지 않는다는 게 긍정으로 읽히는 경우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에 의존해 사는 직업정치가와 정치를 위해 사는 정치가, 즉 소명(召命)의식을 가진 정치가를 구별한다. 정치권 밖의 한 분야에서 확고하게 자기 입지를 굳힌 사람이 대중의 요구에 부응해 정치권에 들어오는 경우는 베버가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본 직업정치가와 달리 소명의식을 가진 정치가라 할 수 있다.

 

정치적 카리스마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카리스마는 본래 신의 은사(恩賜)라는 뜻이다. 정치적 카리스마는 본인조차도 예측하지 못한 대중의 지지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그 지지는 은사적이다. 본인이 거기서 시대의 정신을 읽고, 시대의 정신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면 그때의 정치는 직업으로서의 정치가 아니라 소명으로서의 정치가 된다.

 

베버는 정치 기자를 현대적 대중 정당에 속한 직업정치가가 생기기 전부터 활동한 최초의 직업정치가라고 봤고, 변호사를 다른 전문직과 달리 정치를 겸할 수 있고 원한다면 언제든지 정치에 몸담을 수 있는 제1의 직업정치가 예비군으로 봤다. 노무현 정동영 문재인 이낙연 등 민주당 쪽에서 내세운 역대 대선 후보(혹은 예비주자)는 예외 없이 변호사 출신이거나 정치 기자 출신이다.

 

문제는 윤석열에게 소명의식이 있느냐는 것이다. 소명의식이란 자신이 지향하는 정치적 목표를 향해 거듭되는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밀고 나갈 힘이다. 대선에서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못하고 일어설 목표가 있어야 소명의식이 있다고 할 것이다. 반기문은 그런 소명의식 없이 거품 같은 인기에 의존해 나왔다가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사라지고 말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