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한국경제 '12사도'가 혀를 찰 일 (2)

3406 2021. 4. 20. 11:13

'적폐 청산'을 기치로 문재인정부가 4년 전 출범했다. 과거 잘못에서 벗어나자는 취지다. '부실 청산'을 담은 KDI의 1호 보고서와 일맥상통한 듯 보이지만 문제는 잣대다. 문재인정부는 '공정'과 '정의'를 앞세웠지만 그 잣대는 "내 편이냐 네 편이냐"에 따라 수시로 흔들렸다. 그사이 한국 경제에는 해묵은 부실이 켜켜이 쌓여 가고 있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갚지 못하는 기업이 점점 늘어나더니 지난해에는 상장기업의 25%에 이를 정도가 됐다. 단결 투쟁하는 기득권은 보호되고 '대마불사 신화'는 또다시 강렬한 현실이 된다. '경쟁력'이라는 잣대는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어렵다. "비 올 때 우산을 뺏어선 안 된다"는 격언도 있다. 기업 구조조정을 미루는 것은 그런 사정이 있다고 치자. 한국 경제를 어렵게 만든 책임자들의 자리 보전이나 돌려막기 인사는 무슨 의도인가.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와중에도 김현미 전 장관은 역대 최장수 국토교통부 장관 기록을 세웠다. 나랏빚과 실업자가 동반 급증하는 와중에도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역대 최장수 기획재정부 장관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이런 때에 문재인정부 첫 경제수석이었던 홍장표 전 소득주도성장특위 위원장이 KDI 차기 원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최종 후보 3명의 면접 일정도 아직 잡히지 않았지만 그가 차기 원장에 낙점될 것이란 소문은 파다하다. 그러자 KDI에서 일했던 원로 학자 19명이 최근 그의 임명을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펼쳤던 그를 "전대미문의 정책으로 저성장, 고용절벽, 분배 악화를 가져온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50주년을 맞은 KDI. 실패한 정책을 합리화하는 곳이 돼선 안 된다. 정부 눈치를 봐서도 안 될 일이다. 정부 핵심 인사들과 한마음 한뜻이어서 쓴소리를 포기하는 그런 곳으로 변질돼서도 안 된다.

<매일경제 [최경선 논설실장] 2021.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