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진보의 소주성 비판 일리있다 (1)

3406 2021. 5. 28. 09:53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4주년 연설의 한 대목이다. 여기서 ‘그것’은 소득주도 성장(소주성)을 가리킨다. 문 대통령은 “시장의 충격을 염려하는 반대의견도 있었지만, 적어도 고용 안전망과 사회 안전망이 강화되고 분배지표가 개선되는 등의 긍정적 성과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그저 문재인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했던 일련의 포용정책이 코로나 충격을 줄이는 안전벨트 역할을 했다고 표현했다면 훨씬 받아들이기 편했을 텐데 굳이 ‘소득주도 성장’이라고 대못을 박았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 등 논란이 됐던 소주성의 대표 정책을 굳이 하나씩 언급하면서 말이다. 소주성에 대한 대통령의 애착과 집념이 넘쳐났다.

 

학계에서 소주성은 이미 실패로 결론이 났다. 더 이상 지지자를 찾기 힘들 정도다. 경제학자 윤소영은 정권 초기인 2017년 『위기와 비판』에서 소주성을 ‘경제학적 문맹 내지 사기’라고 비판했다. 주류 경제학계의 비판은 소주성이 성장 담론이 될 수 없으며, 정책 의도와는 달리 우리 사회의 최약자를 더 힘들게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담았다. 기존 일자리만 보호할 뿐, 새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다는 지적이 핵심이었다.

 

진보학계 평가도 인색하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는 2018년 “일자리라는 마차는 경제성장이라는 말이 끄는 결과이기 때문에 마차를 말 앞에 둘 수 없다”고 했다. 마차를 말 앞에 뒀으니 말이든, 마차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소주성의 현실 적합성을 문제 삼은 가장 뼈아픈 비유였다.

 

진보 경제학자들이 많이 참여한 지난주 서울사회경제연구소 토론회에서도 따끔한 비판이 나왔다. 진보·개혁성향의 연구소를 이끌던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의 아호를 따 ‘학현(學峴)학파’로 불리는 학자들이 다수 참여했는데, 단순한 소주성 비판을 넘어 곱씹어볼 만한 내용이 많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와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발표한 부분에서 뽑았다.

 

서경호 경제·산업디렉터[중앙일보] 2021.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