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재앙의 판도

3406 2021. 7. 24. 10:17

독일과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접경 지역에서 폭우로 인해 땅이 꺼지고 집들이 떠내려가며 180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수백 명이 실종됐다. 2020년 여름에 우리도 겪었지만 요즘 여름비는 예년에 비해 훨씬 세차게 그리고 오래도록 내린다. 이번에 독일 일부에는 한 달 동안 내릴 비가 하루에 다 쏟아졌다. 서유럽에서 가장 비가 많이 오는 나라인 네덜란드는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0.1㎜ 이상 비가 내리지만 1년 내내 모아본들 800㎜를 넘지 않았다.

 

남극과 북극의 기온은 지구 평균보다 두세 배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극지방의 기온이 오르며 열대와 온도 차이가 줄어들면 제트기류의 이동 속도가 느려진다.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습도는 7%씩 상승한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가 예전에 비해 훨씬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다. 기후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극한 기후가 점점 더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고.

 

재앙의 판도가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 재앙은 주로 후진국을 덮쳤다. 그러면 지켜보던 선진국들이 원조도 하고 긴급 구조 작업도 돕곤 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전혀 다른 양상이 벌어졌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코로나19 팬데믹의 폐해를 제일선에서 겪었다. 홍수는 주로 배수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저개발국들이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고질적 재앙이었다. 이제 홍수는 그 규모가 우리가 구축한 시설 한도를 뛰어넘는다.

 

홍수의 홍(洪)은 모두(共)가 힘을 합해야 큰물(水)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글자라고 한다. 제방을 넘어 밀려드는 강물을 막으려면 모두가 함께 방재 작업에 나서야 한다. 온실 기체는 부자 나라들이 내뿜는데 정작 물에 잠기는 건 투발루인 줄 알았다. 이제 기후 위기에는 저지르는 나라와 당하는 나라가 따로 없다. 지구촌 모든 나라가 손을 맞대야 함께 이 재앙을 이겨낼 수 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2021.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