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머리로 싸우는 전쟁과 탈피오트의 교훈(2)

3406 2021. 9. 14. 09:31

이스라엘도 1967년 6일 전쟁의 승리에 도취되어 있다가 1973년 욤 키푸르 전쟁에서 이집트와 시리아의 공격으로 공군 전력 5분의 1을 잃고, 전쟁 발발 24시간 만에 무적의 탱크 300대 중 200대를 잃었다. 이후 패전의 통렬한 반성이 1979년 ‘탈피오트’라는 엘리트 군사교육 프로그램을 탄생시켰다. 제이슨 게위츠(Jason Gewirtz)가 쓴 『이스라엘 탈피오트의 비밀』은 이스라엘이 군대 패러다임을 바꾼 비결을 잘 보여준다.

 

이제 전쟁은 머리로 싸운다. 탈피오트 조직은 첨단무기 개발을 위해 뛰어난 고교 졸업생을 간부 후보생으로 모집하여 군 복무 중 3년 안에 학사학위를 취득하게 하고 5년간 추가 복무를 시킨다. 탈피오트는 견고한 산성, 최고 중의 최고라는 히브리어로 엘리트 리더십을 의미한다.

 

상위 5%의 지성, 창의력, 집중력, 인성을 가진 인재를 발굴하여 수학, 물리학, 컴퓨터 과학을 히브리대학 안에서 교육한다. 낙하산 훈련을 비롯한 군사훈련과 군사공학 교육도 철저하게 받는다. 부대 경험을 통해 군사기술 문제를 풀어내는 과제를 수행하여 전기통신 시스템, 인공위성 카메라, 사이버 방어 시스템, 미사일 요격 시스템 등에 관련된 최첨단 기술을 개발한다.

 

이스라엘에서는 탈피오트 부대원이 연예인보다 더 선망의 대상이 된다. 무인정찰기, 로봇전투원, 드론 전투기, 무인 지상 차량 등 세계 최첨단 군사기술은 탈피오트 출신에 의해 개발된다. 1%의 리더가 나라를 살린다는 자부심으로 탈피오트 엘리트들은 군에서 개발한 최첨단 기술로 제대 후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시장을 사로잡는다.

 

탈피오트 부대 출신들은 세계 최대 인터넷 방화벽 회사인 체크포인트와 같은 스타트업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의 핵심기술을 제공하는 모바일아이도 이들의 작품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모바일 기기를 일시 정지시키는 에어패트롤, 더 많은 정보를 저장하는 기술을 가진 아노비트, 새로운 레이더 기술을 활용한 웨이브즈 오디오 등 다양한 첨단기술의 스타트업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하고 있다. 그래서 탈피오트 출신들을 아이디어 머신이라고 부른다.

 

군대 내 폭력, 불량급식, 성추행, 노크 귀순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군도 이제 패러다임 전환을 할 때가 되었다. 세계 10위의 국방비와 60만 대군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모병제 논의와 함께 최첨단 군사기술을 개발하는 엘리트를 육성해야 한다. 군 복무를 허송세월이 아니라 제대 후 성공의 지름길로 만들어 군대에 가고 싶게 해야 한다. 몸으로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머리로 싸우는 전쟁으로 전쟁의 패러다임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중앙일보 2021.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