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대통령 닮지 않은 분을 찾습니다’(2)

3406 2021. 10. 8. 09:59

메르켈이 총리에 취임한 2005년 독일 경제는 동맥경화증을 심하게 앓는 유럽의 환자(患者)였다. 메르켈은 집권 16년 동안 독일 경제를 되살려 유럽의 기관차로 다시 달리게 하고 베를린을 유럽 정치의 심장으로 뛰도록 바꿔놓았다. 메르켈은 기회 있을 때마다 그 공(功)을 경쟁 정당 소속 전임자 슈뢰더 전(前) 총리에게 돌렸다. 슈뢰더는 노조(勞組)의 기득권을 줄여 독일 경제 혈관에 쌓여가던 노폐물을 제거해 노동 관계를 유연하게 만들었다. 곳곳에서 줄줄 새던 사회보장제도 파이프의 구멍도 틀어막았다. 슈뢰더 개혁의 꽃이 메르켈 시대에 핀 것이 사실이다. 전임자에게 공을 돌린다고 자신의 공적이 줄어들지 않는 게 고급(高級) 정치 수학이다. 전임자들을 감옥에 쟁여 놓아야 자기 시대가 환해지는 것이 아니다.

 

구(舊) 동독 목사님 딸인 자그마한 체구의 메르켈은 겁이 없었다고 한다. 1995년 개에게 한번 물린 다음 개는 무서워했다. 메르켈의 퇴임 소식을 전한 미국과 유럽 신문들은 다 같이 사진 한 장을 실었다. G7 정상회담 사진이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트럼프가 팔짱을 낀 채 앉아 거드름을 피우고 건너편에 메르켈이 서서 트럼프 눈을 빤히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다른 국가 정상들은 메르켈 옆과 등 뒤에서 겁에 질린 듯 이 대좌(對坐)를 지켜보고 있다. 독일 국민들은 이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메르켈은 생각이 다른 여러 유럽 국가들의 뜻을 한데 모아 자주 미국을 뒷받침했지만 ‘높은 산’이라며 미국에 굽신거리지 않았다.

 

강원랜드는 코로나로 관광업이 얼어붙기 전인 2019년 매출 1조5200억원 순익 5110억원을 기록한 공기업이다. 정부는 며칠 전 이 회사 사장으로 민주당 지역위원장, 부사장에 민주당 의원 보좌관, 상임 감사는 총리 공보실장, 비상임 이사에 민주당 강원도당 부위원장 출신을 임명했다. 권력을 잡으면 이래도 된다는 것이다.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가 자신이 설계했다고 자랑한 판돈 1조원 규모 ‘화천대유 도박장’에 수많은 얼굴이 올라왔다. 대법관, 검찰총장, 검사장, 특검(特檢), 야당 의원(여당 의원도 곧 나올 듯하다)…. 당첨자가 누가 될지 미리 알고 하는 도박이니 일종의 사기 도박이다. 진짜 주연(主演)은 내년 대선 결과에 따라 영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지도 모른다.

 

‘국민 여러분, 분노(忿怒)와 통증(痛症)을 느끼십니까, 뭐라고요, 크게 말씀해 주세요.’ 화나고 아파야 희망이 있다.

칼럼 강천석 논설고문 2021.10.02 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