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한국은행 총재를 대통령이 임명하는 이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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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4. 9. 10:37
71년 전, 연준은 「재무부-연준 합의」로 독립성을 쟁취했다. 이로써 연준은 재무부 압력 아래 지속된 국가채무의 화폐화(국채 매입·가격지지) 관행과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당시 트루먼 대통령은 윌리엄 마틴 주니어 재무부 차관보를 곧장 연준의장에 임명했다. 「합의」로 일단 물러섰지만 "재무부 사람을 앉혀 연준을 다시 장악"하려는 트루먼의 강수(强手)였다. 과연 통했을까? 다음 기록이 모든 걸 말해준다. "수년 후 뉴욕시 5번가에서 마틴과 우연히 마주친 트루먼은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 "배신자(traitor)"라고 짧게 내뱉곤 가던 길을 재촉했다."
중장기 시계의 중앙은행과 단기 시계의 정부는 국민경제를 위해 서로 협조하는 보완 관계다. 이것이 존중되지 않을 때 협조 테이블은 전장(戰場)이 된다. 마틴 연준 의장은 연준의 제도적 독립성(「합의」)을 ‘실제적 독립성’으로 승화시킨 올곧은 장수(將帥)였다. 마틴은 연준 사상 최장수(226개월) 의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물가안정 및 거시경제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단기금리 변경"을 통한 "경기대응적 통화정책"을 펼침으로써 오늘의 현대적 통화정책체계를 확립했다. 흔히들 시스템을 말한다. 하지만 그런 시스템도 결국 사람이 만든다.
한은 총재는 언제라도 전사할 각오와 기개(guts)로 국민경제만을 바라보며 정책에 임해야 한다. 총재 후보자의 무운(武運)을 빈다.
김홍범 경상국립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220404 오피니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