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6에서 '사자 돌림'으로…현대판 양반전(1)
조선시대 양반에 대해선 알면 알수록 분노가 치민다. 군자·선비라는 허울 아래 군역과 조세를 면제받고 무지렁이 백성들 위에 ‘허가받은 흡혈귀’(이사벨라 버드 비숍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로 군림했다. 서구 역사 속 노블레스 오블리주 같은 사례는 가물에 콩 나듯 했을 뿐, 착취와 약탈이 일상이었다. 특권과 선민의식으로 똘똘 뭉친 그런 양반계급을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한국의 파워엘리트 집단에서 다시 보게 된다. 좌우 구분도 없다.
장삼이사들 눈에는 문재인 정부의 586 집권세력과 윤석열 정부의 인선이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586 패악질이야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무능과 위선, 내로남불과 시대착오로 5년을 허송했다. 정권 이양을 20일 앞두고도 민초와 무관한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에 매진한다. 그 독선과 퇴행은 ‘유교 탈레반(사림파)’에 비유될 정도다. 호언장담하던 ‘20년 집권’이 5년 만에 끝난 것도, 20년간 나눠 쓸 권력을 5년 만에 탕진한 탓일 게다.
윤석열 정부는 다를까. 그런 역주행을 끝내라고 국민이 선택한 정부라면 달라야 마땅하다. 하지만 기대보다 우려가 앞선다. 대통령 당선인과 총리·장관 후보자 20명 중 대다수가 고시(사시 5명, 행시 5명, 외시 1명) 출신이거나 박사·의사(4명)다. 가히 ‘고시(高試) 정부’ ‘사자 돌림 정부’로 부를 만하다. 고시나 전문직은 국정 운영 실력이야 586보다 낫겠지만 우리 사회 최고 신분증이다. 586이 민주화운동 경력을 30년 넘게 우려먹으며 특권의식에 절었듯이, 이들은 그 자격증으로 평생을 누린다.
그래서 정권 교체가 정권 교체로 다가오지 않는다. 국가 정향(定向)과 가치의 대전환이 아니라 라운드를 거듭하는 현대판 양반집단 간 전쟁으로 비친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아빠 찬스’ 논란부터 그렇다. 자타공인 ‘윤핵관’ 장제원 의원은 “조국 사태와 뭐가 같냐”고 옹호했지만, 국민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자식을 자기 의대에 편입시킨 것부터가 이해상충인데 이게 잘못이란 생각조차 없다. 공직 후보자들의 전관예우성 로펌 및 사외이사 이력도 마찬가지다. 본인 또는 자식이 군대 안 가고, 신용카드 대신 현찰만 쓰면서도 편히 살 수 있다는 것도 놀랍다.
오형규 한경BP 대표 22.04.20 오피니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