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홀대한 대한민국 국회 (1)
(전략) 여기서 철학적 질문이 나온다. 정당한 전쟁은 존재하는가? 네덜란드의 법학자 휘호 흐로티위스(Hugo Grotius)는 1625년 초판 발간된 <전쟁과 평화의 법>에서 정당한 전쟁을 논하기 위한 요건을 크게 셋으로 나누었다. 첫째, 타국이 침략할 때 당하고만 있는 어리석은 평화를 옹호할 수는 없다. 자기 방어를 위한 전쟁은 정당하다. 둘째, 정당한 권리를 빼앗겼을 때 그것을 되찾는 방법이 전쟁밖에 없다면, 권리 회복을 위한 전쟁도 때에 따라 정당하다. 셋째, 인류 보편의 눈으로 볼 때 도저히 용납 불가능한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면 그것을 막기 위한 전쟁에도 정당성이 부여된다.
흐로티위스 눈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면 어떨까? 우크라이나 동부 영토는 러시아 것이며, 우크라이나의 나치를 쫓아내겠다는 것이 푸틴의 명분이었다. 둘째와 셋째 이유를 들이댄 것이다. 그런데 젤렌스키 대통령은 아우슈비츠 생존자 집안 출신 유대인이다. 나치 운운하는 것은 거짓말을 넘어 모욕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한 전쟁’으로 인정하는 국가는 북한을 비롯한 극소수뿐이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침략을 당한 처지다. 젤렌스키의 전쟁은 의문의 여지 없이 정당하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러시아의 공세를 막아내면서 젤렌스키는 글로벌 리더로 부상했다. 처칠의 명언을 인용한 영국 하원 화상 연설은 그러한 행보의 백미로 꼽힌다. “우리는 해변에서도, 벌판에서도, 언덕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가장 어두운 시간, 국민의 의지를 모아 항전하는 리더의 등장에 자유 진영이 열광한 것은 당연한 일. 결국 우크라이나는 키이우를 향한 러시아의 공세를 꺾었고, 키이우를 방문한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은 젤렌스키를 만나 뜨거운 악수를 나누었다.
이 추세에 역행하는 나라가 있다. 대한민국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내뱉은 ‘초보 대통령이 러시아 자극해 전쟁 벌어졌다’ 발언만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화상 연설을 보면, 우리 현실은 참담할 정도다. 국회 본회의장이 아닌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여야 의원 300명은 고사하고 고작 5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기립 박수조차 나오지 않는 썰렁한 행사를 만들고 만 것이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2022.04.16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