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민주 대 반민주’ 아니라 ‘진실 대 탈진실’이다 (2)

3406 2022. 5. 31. 10:02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노회찬, 안희정, 박원순은 순진했다. “죽을 죄를 지었다”며 얼굴을 가린 최순실 씨도 그렇다. 조 전 장관이 이렇게 당당한 이유는 “당시 사태에 대해서 다른 시각들이 있었고 다른 경험, 다른 증언이 있었음을 알아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 때문이다. 유시민 작가도 그렇게 생각했다. 진중권 전 교수는 그에게 동양대 표창장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그러자 유 작가는 바로 “‘대안적 사실’을 제작하여 현실에 등록하면, 그것이 곧 새로운 사실이 된다”고 하며, 오히려 진 교수를 안심시켰다고 한다.

 

조고의 수법이다. 그러나 최신식이다. 그 철학적 근거가 포스트모더니즘이며, 그 수단이 소셜미디어고, 그 정치가 팬덤정치이다. 이른바 포스트트루스(post-truth) 시대의 전형적 현상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적 진리, 객관적 진리를 철학이 만들어 낸 허구로 본다. 모두 대안적 사실일 뿐이다. 탈진실의 태도이다. 철학이나 과학이 아닌 정치와 사회에 이 관점을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사회적 상식은 물론 사법부의 판결조차 뿌리를 상실한다. 플라톤이 소피스트를 아테네의 정신적 파괴자로 여긴 것은 이 때문이었다.

 

탈진실 시대의 핵심 질문은 현실을 파악할 수 있는지, 처음부터 현실 자체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탈진실의 상황은 소셜미디어의 확산과 함께 2000년대 초부터 폭풍같이 등장했다. 소셜미디어에 집결한 진영의 창고(silo)에 갇혀 정치를 종교적 광신으로 바꾼 게 팬덤이다.

 

한국정치에서 포스트트루스 시대의 정치는 지난 대선에서 본격 개막되었다. 대장동 사건 혐의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씨가 여당 후보가 되었다. 진실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그와 대결한 윤석열 후보는 조국 사태와 정면 대결하면서 급부상했다. 정치 참여 8개월 만에 이겼다.

 

87년 체제는 끝났다. 이번 대선의 시대적 의미이다. 87년 체제의 프레임은 ‘민주 대 반민주’였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진실 대 탈진실’의 싸움이었다.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은 탈진실의 정치공간을 선점하고 한국정치를 지배했으나, 사실에 기초한 검찰의 법치주의에 막히고, 국민의 선택에 꺾였다. 그게 조국 사태의 원인이고, 대선에 진 이유이며, 검수완박 사태의 본질이다. 박지현 위원장은 그런 사실을 경고한 것이다.

 

한국정치의 시대적 어젠다가 탈진실의 문제로 변했다. 오웰은 빅 브라더를 우려했다. 하지만 지금 민주주의의 적은 팬덤이다. “전체주의 지배가 노리는 가장 이상적인 대상은 확신에 찬 나치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아니다. 사실과 허구 혹은 참과 거짓을 더 이상 분간하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이다.”(H. Arendt) 이제 진실을 말하는 것이 곧 혁명이며, 지성이 무기이다. 세계관이 시대적 과제라는 점에서, 대한민국은 새로운 1948년을 맞이하고 있다.

조선 칼럼 오피니언 입력2022.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