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송전철탑이라는 블루오션(1)

3406 2022. 6. 4. 11:09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우와, 아파트 진짜 많다!” 산 정상에 오르면 들리는 감탄사다. 그런데 그 느낌표 뒤에 대개 비난이 이어진다. 다 궤짝 같다. 획일적인 몰골에 대한 지탄이 넘치고 반성이 무르익자 아파트 입면 특화사업이라는 게 벌어졌다. 옥상에 이상한 장식물 올려놓고 벽에 공연히 띠를 둘렀다. 좋은 디자인은 첨가와 장식으로 얻는 게 아니라는 기본 원칙은 들어본 적이 없다는 도시 풍경이 이루어졌다. 도시가 유치원 앞마당이 되어 버린 것이다.

 

좀더 높은 곳에 올라가 보자. 제주도에서 탄 비행기가 수도권에 이르면 저 아래 말린 해삼뭉치 같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와, 골프장 진짜 많다!” 골프는 한량 사치풍류가 아니라 대중 일상도락에 가까워졌다 하니 더 이상 시빗거리는 아니다. 사실 골프장은 대개 산속에 숨어있으므로 경관이라는 점에서 비난거리도 아니다. 그런데 골프의 문제는 골프장이 아니라 골프연습장에 있다.

 

골프는 변수 많은 자연 속의 귀족 놀이였던지라 규정은 복잡하고 예법은 엄정하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고 연습이 요구된다. 연습장은 도시에 가까워야 좋겠으나 땅값과 소음 분쟁으로 적당히 외곽부에 물러나 있어야 한다. 일본에서 수입한 것이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아래 사람 있는 그물망 골프연습장이다. 그런데 골프채는 해마다 진화한다는데 골프연습장은 우리 시대의 삼엽충인지 여전히 무심하고 끔찍한 모습이다. 그 크고도 흉측한 덩치를 도시 여기저기에 밀어 넣는 게 문제다.

 

해삼뭉치나 삼엽충보다 더 괴상한 것이 있다. 꼭 필요한 것이나 가까이 할 생각이 전혀 없는 그건 송전철탑이다. 종종 극단 갈등의 대상인 혐오기피 구조물이니 산간지역에 우회설치된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산천풍광 좋은 곳을 종횡무진 누벼야 하는 모순의 주인공이다. 미국의 첫 디자인으로부터 백 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이 물건 역시 진화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전 세계적으로 거의 동일한 형태라는 게 더 특이하다. 송전철탑에 관한 성토 역시 범세계적이다. 그래서 기둥형 철탑이 세워졌고 사람 모양, 동물 모양 철탑을 대안으로 내세운 나라도 있다. 국토가 동물원이거나 희극장으로 변한 사례다.

[중앙시평] 22 06. 03 오피니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