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우릴 양떼처럼 죽였다” 모리오리족의 비극

3406 2022. 6. 16. 09:31

유윤정 생활경제부장

 

뉴질랜드에서 동쪽으로 80km 정도 떨어진 고립된 섬 채텀제도에는 수세기에 걸쳐 모리오리족이 살았다. 그러나 1835년 12월, 이들 2000여명은 총과 곤봉·도끼로 무장한 900여명의 마오리족에 습격당하며 몰살당했다.

 

마오리족은 모리오리족을 살해해 많은 시체를 요리해 먹었고, 남은 사람들은 노예로 삼았다. 모리오리족의 한 생존자는 “마오리족이 우리를 양떼처럼 죽이기 시작했다.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 아이들까지 무차별로 학살당했다”고 했다.

 

놀라운 것은 이 두 종족이 모두 1000년경에 뉴질랜드로 이주했던 폴리네시아 농경민의 후손이라는 점이다. 같은 조상을 둔 이들 두 집단은 헤어진 후 몇 세기에 걸쳐 서로 반대 방향으로 발전했다.

 

모리오리족이 이주한 남쪽 채텀제도는 먹고살 것이 풍부했다. 이들은 특별히 정교한 기술이 없어도 맨손이나 곤봉으로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물고기, 조개류, 바다표범 등을 먹거리로 삼았다. 한랭한 기후여서 수집과 채집 위주로 발전하고 기술도 점점 단순화되며 후퇴한 것이다.

 

반면 북쪽으로 이주한 마오리족은 기후가 따뜻해 더욱 집약적인 농업에 매달리며 기술혁신을 이루었다. 농작물을 기르고 예술을 창작하기 위한 다양한 도구가 발달했다. 잉여농산물을 생산해 저장하고, 정교한 의식용 건축물도 지었다. 막대한 수의 성채도 세웠다.

 

똑같은 조상 사회로부터 갈라졌지만 두 종족은 서로 판이하게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고, 결국 기술의 발전을 수용한 마오리족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에서 소개한 두 종족의 잔혹한 충돌 이야기의 핵심은 ‘혁신’이다. 혁신이 국가의 흥망성쇠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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