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미학
최근 모 대학 교수인 영문학자가 ‘눈’에 관한 책을 출간하였다. 인간의 눈을 통해 인식과 사유의 역사를 밝히고자 한 책이다. 그에 따르면 눈은 우리의 모든 감각 중 가장 중요한 감각으로,
“눈이 있다는 것은 본다는 것이며, 본다는 것은 인식하는 것이며, 인식한다는 것은 전체 중의 부분만을 파악하는 것이기에 눈이란 진정한 감옥이다…언제나 부분만을 파악하는 것, 이것이 모든 인식 작용의 한계다. 그리고 부분만 파악하면서 그것을 전체라고 규정하는 것이 인식 작용의 모순이다”고 말했다.
그렇다. 동물과 달리 인간은 눈을 통해 생각하고 깨닫고 파악한다. 비록 그것이 부분적이고 한정적일지라도 인간은 그러한 경험과 지각을 통해 ‘본다’는 자긍심과 ‘아름답다’는 자부심을 갖는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모나리자’의 눈이 그 대표적인 예다.
흔히 우리는 낯선 사람이 바라보면 시선을 돌리고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도 마주 바라보기가 민망하면 눈을 감거나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또 거짓말을 할 때에도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무시(無視)하는 경우에는 눈을 아래로 깔거나 허공을 응시하며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모두가 볼(見) 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지 않는 경우다.
우리는 눈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눈을 통해 사람의 인식의 척도를 결정하고 그 사람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판단한다는 말이다. 그것은 사랑하는 연인을 가리켜 ‘두 사람이 눈이 맞았다’고 하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는 시간에 의해 그들의 사랑의 깊이를 파악하고 신뢰를 평가한다는 말이다.
비록 우리의 눈이 인식 작용의 한계와 모순을 갖고 있다할지라도 그 눈으로 사랑과 믿음을 간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눈은 아름다운 마음의 창이 된다.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는 추악하고 더러운 정치·사회적 작태가 우리의 눈을 감옥 안에 가두어 두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의 눈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고 그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 기도를 드릴 수 있을 때를 기대한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2)”
(지인성(린나이코리아 사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