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친문 국책연구원장들의 불편한 처신

3406 2022. 9. 16. 10:10

고현곤 논설주간 겸 신문제작총괄

 

(전략) 국책연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한다. 국정에 도움을 주는 연구와 조언을 한다. 독립성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국정철학의 큰 틀을 정부와 공유한다. 홍 원장처럼 180도 다른 생각을 갖고 국책연을 이끄는 것은 무리다. 정부는 동쪽으로 가는데, 서쪽이 맞다고 우기는 셈이다. 새 정부 민간주도 성장을 이윤주도 성장이라 비판하는 홍 원장이 계속 있었으면? KDI가 역할을 못하고, 세금만 축내는 곤혹스러운 상황이 이어질 뻔했다.

 

지난 7월 친문의 간판인 홍 원장과 황덕순 노동연구원장이 물러나자 국책연구원장들의 줄 사퇴가 예상됐다. 하지만 두 달 째 감감무소식이다. 문 정부 국정철학을 신봉하고, 새 정부의 성공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 정해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은 친노·친문 학자다. 문 정부 초기 국가정보원 적폐청산을 주도했다. 올 대선 후 토론회에서 “소주성 논란은 타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하기보다는 정쟁적 이해를 목적으로 전개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문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 소주성 성과를 깎아내렸다고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강현수 국토연구원장은 문 정부 부동산 정책을 설계한 김수현 사단의 핵심이다. 국토연은 지난해 9월 “강남 집값이 오른 건 언론 때문”이라는 허무맹랑한 보도자료를 냈다. 부동산 참사를 반성하기는커녕 언론에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홍현익 국립외교원장은 “한·미 훈련을 하지 않아도 된다” “북한 미사일 발사를 문제 삼지 않는 게 핵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발언으로 거듭 구설에 올랐다. 국립외교원은 외교 전략을 연구하는 외교부 산하 국가기관이다. 새 정부 외교안보 정책과 달라도 너무 다른 그가 국립외교원장으로 있다. 정상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 출신인 임춘택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은 탈원전론자다. “원전 생태계를 조속히 복원하라”는 윤 대통령과 대척점에 있다. 지난 5월 인터뷰에서 “영구 정지한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는 이전 정부에서 사실상 결정된 것을 문 정부가 이행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검찰이 월성1호기 폐쇄 강요를 수사 중인데, 문 정부는 책임 없다고 두둔한 것이다. 청와대 게시판에 ‘(월성1호기) 외벽에 철근이 노출돼 있다’는 글을 올렸던 문미옥 과학기술보좌관은 현재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이다.

 

박종규 금융연구원장은 문 정부 첫 2년반 청와대 재정기획관으로 일했다. 2013년 ‘임금상승률이 실질 국내총생산 증가율보다 낮다’는 보고서로 소주성의 토대를 제공했다. 금융연구원은 국책연은 아니지만, 정부와 금융정책을 논의한다. 주현 산업연구원장은 홍장표 수석 밑에서 중소기업비서관을 지냈다. 이태수 보건사회연구원장은 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 2016년 총선 때 민주당 비례대표 18번을 받았다. 새 정부와 결이 다른 국책연구원장들이 넘쳐난다.

 

문 정부가 지난해 정치색 짙은 청와대·위원회 출신을 대거 국책연구원장에 앉힌 게 잘못이다. 임기는 대부분 2024년까지다. 물론 원장 임기 3년은 법으로 정해져 있다. 직전 정부에서 일한 경력이 흠결은 아니다. 하지만 국정철학이 정반대고, 소주성 부활을 꿈꾼다면 지금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윤 대통령은 개혁 적기인 첫 2년간 국책연의 조언을 받지 못할 판이다. 외환위기급의 퍼펙트 스톰이 닥치고 있다. 국책연의 지혜가 절실한 때인데, 아쉽다.

 

친문 국책연구원장들은 민간으로 돌아가는 게 맞다. 본인도 살고, 연구원도 살고, 나라도 살리는 길이다. 소주성·탈원전·재정확대에 뜻을 같이하는 민간연구소나 시민단체를 찾든지, 학교로 가든지, 책을 쓰든지…. 지금 자리를 고집한다면 이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국정을 훼방놓으려는 심산이거나 ‘내가 맞다’며 오기를 부리거나. 그것도 아니면 번듯한 명함과 월급·차량을 포기하지 못하는 생계형이거나. 어떤 경우에도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중앙일보 고현곤 논설주간 겸 신문제작총괄 2022.09.13. 오피니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