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개혁, 각개격파가 답이다
박병원 안민정책포럼 이사장·前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역대 정부가 모두 규제 개혁을 하겠다고 했지만 다 실패했다. 투자와 일자리 창출은커녕 대기업에 이어 중소기업까지 해외투자가 늘어나 해외투자가 외국인투자의 3배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 실패의 증거다. 규제 혁신의 최종 목표가 투자와 일자리 창출임을 명심하자.
아무리 터무니없는 규제도 적어도 일부 국민은 원하는 것이다. 전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일은 표로 연결되기 어렵지만, 이익집단은 표 결집력이 강해서 정치인들로 하여금 규제를 만들게 할 수 있다. 규제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규제 개혁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는 한다”고 할 정도의 설득은 하고 필요하면 적절한 보상도 해야 규제개혁이 가능하다. FTA를 추진할 때 농민의 손해를 보전해 주기로 약속한 것처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연금개혁, 노동개혁, 교육개혁이 거론되고 있지만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서 가시적 성과를 하루빨리 올려야 하는데 법을 고칠 능력이 없는 현 정부로서는 먼저 가격 규제와 토지 이용 규제를 겨냥하는 것이 상책이다.
가격 규제는 법에 권한이 있어도 대개 “할 수 있다”지 “하여야 한다”가 아니므로 정부가 그만두기만 하면 된다. 역대 정부가 “서민 생계비 부담 경감”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해 온 가격 규제는 실제 가격을 잡지는 못하고 관련 산업을 망가뜨렸다. 특히 전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구상에 따라 의료, 보육, 주거, 교육, 통신, 교통비 등 전방위적으로 가격 통제를 했는데 이들 산업과 종사자들의 일자리를 망가뜨리기만 했다. 14년 등록금 동결은 대학을 초토화시켰고, 전기료 억제는 뉴욕 증시 상장법인인 한전의 주가를 반 토막 이하로 떨어뜨렸다.
그다음으로 덜 어렵고 효과가 큰 것은 토지 이용 규제를 최소화하고 권한을 지자체로 넘겨 지자체가 투자 유치를 위해 경쟁적으로 토지를 공급하게 하는 것이다. 자기 땅이 규제에서 풀려난 국민은 뛸 듯이 기뻐할 것이고, 공급이 늘어 지가가 안정되면 온 국민이 혜택을 볼 것이다. 공급이 늘 부족한 토지를 가지고 독점적 이윤을 누려온 일부 땅부자는 반대하겠지만. 전 정부는 공급을 늘리지 않고 세금으로 가격을 안정시키려고 하다가 실패했다.
핵심은 투자에 가장 큰 걸림돌인 노동규제 개혁이다. 노동법이 만들어 놓은 철밥통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은 사실 10% 남짓한 “노조를 가진 노동자”들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호봉제를 지키고 싶은 노동자도 있겠지만 연봉제를 원하는 노동자도 있다. 남이 연봉 1억원을 받는 일을 연봉 4000만원에 할 테니 일자리를 달라고 하는 노동자도 있다는 게 증명되었다.
지켜야 할 기득권이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취약 계층 노동자나 미취업자, 실업자가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을 막지만 말아달라고 노조를 설득할 수는 없을까? 당신들의 호봉제는 퇴직 때까지 유지할 터이니 연봉제로라도 취직을 원하는 사람을 막지는 말아 달라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기존 노동법규에 그 어떤 변화도 거부하는 것은 과잉방어요 지나친 횡포다. 사용자가 원하는 것은 들어 주지 않아도 좋으니 다른 노동자, 특히 실업자가 원하는 변화라도 싹을 틔워 보자는 것이다.
교육개혁은 대학, 교육지자체와 학교에 최대한의 선택의 자유를 주면 된다. 교육부 이외에는 반대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교육 수요자의 요구에는 관심이 없고 교육의 공급자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교육부에 맡겨 놓으면 교육개혁은 당연히 실패한다. 전문성이라는 탈을 쓴 교육 공급자를 배제하고 수요자가 지배하는 추진체계를 만들어야 교육개혁이 된다. 국민이 원하는 교육은 하나가 아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원하는 국민이 있고 학력 평가, 경쟁을 혐오하는 국민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러 가지 선택지가 공존하게 만드는 것이 교육개혁이고 가급적 작은 단위의, 궁극적으로 학교 단위의 자치를 강화하는 것이 그 길이다.
연금개혁은 중대하고 시급하기는 하지만 이익 보는 사람은 없고 국민 모두가 조금씩 양보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걸 납득시켜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전 국민이 상황을 이해하고 개혁에 협조하게 만드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상황 파악만 되면 금 모으기도 해 주는 국민이다.
나라 단위로 하나의 최선의 선택을 정부가 해 주겠다는 사명감을 포기하는 것이 규제 개혁의 시발점이다. 작은 문제를 모아서 큰 문제로 만들지 말고 문제를 쪼개서 작은 문제로 만들 생각을 하는 게 좋을 성싶다.
조선칼럼 22.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