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아돌포 카민스키, 1만 명을 구하다

3406 2023. 1. 20. 11:23

허행윤 기자

 

초등학교만 졸업했다. 염색공장 직공이었고 불과 열아홉 살이었다. 청년은 일터를 세탁소로 옮겼다.

 

그때 바깥세상에선 전쟁이 터졌다. 이따금 포성이 들려왔다. 그래도 묵묵히 일에만 전념했다. 세탁소에서 근무하면서 틈틈이 익힌 게 있었다. 잉크 제거 기술이었다. 고객들이 맡긴 옷가지에 스며든 잉크 자국 등을 말끔하게 제거하면서 자연스럽게 손에 밴 노하우였다. 얼룩이 진 외투들이 유난히 많았던 시절이었다.

 

뭔 뚱딴지같은 얘기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시기는 1940년대다. 장소는 나치가 점령했던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이었다. 유럽을 휩쓴 제2차 세계대전의 광풍은 청년이 살고 있던 외딴 마을에도 불어 닥쳤다.

 

소년은 프랑스 정부가 발급해준 신분증에서 ‘이삭’이나 ‘아브라함’처럼 유대계 프랑스인이 즐겨 사용하는 이름을 지웠다. 그 대신 그 자리에 프랑스인 느낌이 나는 새 이름을 입력했다. 신분증에 새로운 이름을 새기는 과정에선 초등학교 재학 시절 학교 신문을 편집할 때 배운 기술을 이용했다. 가짜 문서도 제작했다. 고무를 이용해 관공서 직인과 문서 상단 레터헤드와 워터마크까지 만들었다.

 

프랑스 비밀 유대인 지원 조직에도 알려졌다. 각종 주문이 잇따랐다. 유대인 어린이를 위해 출생증명서 900장과 식량배급카드 300장을 사흘 안에 위조해 달라는 주문도 받았다. 유대 어린이들은 밤을 새워 만든 위조문서로 스위스나 스페인 등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1시간에 문서 30장을 위조할 수 있지만 1시간 동안 잠을 자면 소중한 생명 30명이 목숨을 잃는다.” 그가 하루에도 수십 번 되뇌던 주문이었다.

 

외신에 따르면 이처럼 문서 위조 기술로 유대인 1만 여명을 구했던 프랑스인이 최근 세상을 떴다. 아돌포 카민스키. 역사는 그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

[지지대] 허행윤 기자 heohy@kyeonggi.com 23.01.13. 오피니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