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다수당 책무 저버린 민주당 모습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국회 다수당은 그냥 정당이 아니다. 입법부를 이끄는 국정 운영의 공동 주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행정부는 입법부의 결정 사항을 집행하는 역할을 맡으므로 국정 운영의 가장 근본적인 축은 입법부다. 그러므로 다수당은 주체답게 국정을 위한 나름의 철학·의제·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와 조정·조율에 임해야 한다.
반면, 야당은 대통령의 시각에서 자기편인 더불 여(與)자의 여당과 달리 바깥에 나가 있는 들 야(野)자의 무리를 뜻한다. 대통령과 행정부의 반대편에 서서 견제하는 존재다. 다수당이 적극적·주체적인 의미를 띠는 것과 대조적으로, 야당은 반대·비판·비협조 등 소극적·반사적(反射的)인 의미로 다가온다.
그동안 우리나라 정치에서 대통령의 존재와 영향이 워낙 컸기에 다수당은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 다수당이 대통령 소속 당이던 때는 대통령의 그늘에 갇혀 빛을 내지 못했다. 대통령 소속 당이 아닌 때에도 다수당은 이름에 걸맞은 국정 주체의 면모를 보이지 못하고 스스로 야당의 위치에 만족하는 듯 야당다운 소극적·반사적 모습만 보였다.
13일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은 이러한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반복해 안타깝다. 연설의 제목, 중간의 부제들, 내용 대부분이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는 데 할애됐다. 다수당으로서 어떤 일을 하겠다는 말은 연설의 뒷부분에 훨씬 적은 분량으로 나온다. 그나마 그 말도 현 정부를 비판하는 맥락 속에서 하다 보니 구체적·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연설이 상당히 길었는데도 과연 다수당으로서 어떤 국정철학을 내세우고 어떤 정책 의제를 제시하는지, 어떤 전략을 추구하는지 명료하게 잡히지 않는 것은 남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자기의 주장인 주(主)와 남에 대한 비판인 종(從)이 바뀌면 곤란하다. 그러면 그냥 야당의 모습만 튀어나오는 가운데 다수당의 위상은 실종된다. 남의 작품에 비판만 하는 비평가가 되길 원하는가? 아니면 아무리 힘들어도 작품을 함께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공동 작가가 되길 원하는가? 물론 비판도 응당 필요하지만, 자기의 구체적인 비전·방안·기회비용을 우선 제시해야 남의 비판에도 힘이 실리지 않겠는가?
남 탓, 남 욕은 악순환을 연속시킨다. 복잡하게 얽힌 국정 문제에서 단순한 인과관계를 찾아 책임을 한쪽으로만 돌리기는 지극히 힘들다. 만약 한 방향의 탓과 비판을 하면 즉시 반대 방향에서 반작용이 나와 부메랑처럼 상황을 악화시킨다. 이날 대표 연설에 등장한 무능·무지·오만과 지지층바라기, 불공정, 안보 위기, 민생 파탄 등 각종 부정적 수사(修辭)는 현 다수당이 전에 집권당이던 때 똑같이 들었던 말이다. 현 정부도 남 탓의 구태를 보이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다수당도 국정의 공동 주체임을 명심하고 비판에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국회 의석의 압도적 우세를 지닌 다수당이 야당 피해 의식에 젖어 있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국회 소수당이라면 몰라도 민주당은 크고 강한 다수당이다. 교육·육아·보건·에너지·복지·안전·안보 등 국민의 수많은 관심사와 관련해 기본적인 철학과 구체적인 정책이 접목된 주장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비판과 협조를 병행하는 다수당을 보고 싶다.
[포럼]문화일보 23.02.14. 오피니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