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정치를 요구해야 하는 이유
김규나 소설가
땅이 요동쳐 지표면 위의 모든 것을 내동댕이쳤다. 수많은 지붕과 기둥이 뒤집어지면서 동시에 온 도시에 부서지는 소리가 퍼져 나갔다. 금속에 떨어진 것인지, 번개가 한순간 황제상 위에 머물렀다. 그러자 청동상과 기둥이 흔들거렸다. 그것은 온 도시를 울리며 쓰러졌고 산산조각이 나 떨어져 그 아래 보도를 박살냈다. 그 소리와 충격에 글라우코스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땅은 아직도 진동하고 있었다. - 에드워드 불워 리튼 ‘폼페이 최후의 날’ 중에서
튀르키예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많은 건물이 무너지고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규모 7.8의 강진이라지만 건물들은 발파 해체하는 빌딩처럼 폭삭 무너져 내렸다.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은 시민은 2000만명, 사망자는 적어도 수만, 많게는 10만 명이 넘을 거라고 한다.
서기 79년, 글라우코스는 연적의 모함을 받아 살인 누명을 쓰고 폼페이의 원형경기장에서 처형될 위기에 놓인다. 그날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한다. 땅이 흔들리고 도로가 갈라지고 건물들이 무너진다. 화산이 불을 내뿜는 아비규환 속에서 관중과 시민들은 달아난다. 글라우코스도 연인의 손을 잡고 달린다.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천재지변을 막을 순 없다. 그래도 지진에 대비한 건축물은 흔들릴 뿐,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다. 1999년부터 지진세를 걷은 튀르키예였지만 내진 설계를 의무화하고 부실, 불법 건축물을 관리 감독해야 했을 정부가 사용 내역도 밝힌 적 없다며, 구조가 지연되고 있는 폐허 속에서 시민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남의 불행 앞에서 자신의 안전에 뒤늦게 가슴 쓸어내리는 존재가 사람이다. 발생률이 낮긴 해도 지진 노출 지역인 우리나라는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 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관리 감독이 철저한 덕에 지진으로 건축물이 무너질 확률은 낮다고 한다.
정치는 멀리 있지 않다. 교육, 일자리, 주택, 교통, 방역, 재판, 세금 심지어 드라마와 영화까지 정치와 무관한 건 하나도 없다. 법과 제도를 결정하는 정치가 전쟁은 물론 자연재해 앞에서도 생사를 가른다. 국민을 위해 일하라고 정치인들을 다그치고 감시해야 하는 이유다.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23.02.15. 전문가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