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을 위한 고난
앨프리드 월리스의 자연과학 수필 중에 나오는 고전적인 이야기가 있다.
누에나방이 번데기에서 고치를 뚫고 나와 나비로 변하는 과정이다. 고치에는 바늘구멍만한 틈이 있다. 그 틈으로 나방이 나오기 위해 꼬박 한나절을 애쓴다.
그 힘든 과정을 치르고 나와 화려한 나비가 되어 날아간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좁은 구멍을 어렵게 나오려고 하던 나비는 영롱한 빛을 비추며 나는데, 쉽사리 구멍을 벗어난 나방은 날지 못하고 떨어져 죽는다.
왜? 좁은 구멍을 나오려는 발버둥과 몸부림이 그를 강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즉, 힘든 고난이 날개 근육을 강하게 만든 것이다.
대만에는 10개 소수 민족이 있다. 시간이 갈수록 더 세력이 약화되어가고 있다. 왜?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기 때문이다. 학비도 면제이고, 여러 보조금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약해지고,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대만만의 문제는 아니다.
북미의 인디언들도 보조금을 받는다. 여러 가지 특혜를 누린다. 그들에게 넉넉함은 있지만, 자립은 없다. 그래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도와주면 망한다. 사회적 약자는 도와야 한다. 왜? 그들은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충분히 자립할 수 있는 사람을 돕는 것은 그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이다. 불쌍하다고 생각 없이 돕는다. 왜? 내 양심이 편하기 때문이다. 약한 모습만 보이면 돕는다. 왜? 내 마음이 흐뭇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이다. 자기중심적인 구제는 독이 될 수 있다. 상대의 유익은 생각지 않는 지극히 이기적인 접근이기 때문이다. 도와서 설 수 있는 사람이 있고, 홀로 부딪쳐서 설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상대가 설 수 있는 길로 도와야 한다. 돈으로 도울 수 있다. 기도로 도울 수 있다. 그리고 지켜보는 것으로 도울 수 있다. 제자 양육을 하거나 자녀를 키울 때, 도와주는 사랑은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도움 받는 곳에서는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최홍준 목사(호산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