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동네 사람들은 요즘 말을 잃었다. 기막힌 일을 당해서다. 할 말이 너무 많아도 입이 안 떨어진다. 지난달 초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자 공연 대부분이 중단됐다. ‘두 칸 띄어 앉기’ 지침으로 객석을 최대 30%만 판매할 수 있는데, 손익분기점(60~70%)에 크게 못 미쳐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고 누가 말했나. 지금 공연장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빈 좌석 두 개’가 있다. 관객 모두 마스크를 쓰고 침묵하는 공연장은 식당이나 대중교통보다 훨씬 더 안전하다. 코로나 감염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 마주 보며 식사한 뒤 지하철로 이동했는데, 왜 영화관에서는 한 칸을 띄어 앉고 공연장에선 두 칸을 띄어 앉아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
독일 환경 당국과 방역 전문가들이 최근 도르트문트 콘체르트하우스에서 의미 있는 실험을 했다. 감염자를 본뜬 마네킹을 객석에 앉히고 코와 입으로 에어로졸을 계속 분사했다. 마스크를 쓴 관객이 한 칸씩 띄어 앉고 20분마다 환기 시스템을 가동하면 에어로졸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연구진은 객석(1550석)을 다 채워도 공연장 내 감염률이 현저히 낮다고 결론지었다. 이것이 과학이다. 불합리한 방역 수칙으로 경제활동 막아놓고 세금 살포해 위로하는 건 가스라이팅(gaslighting) 같은 폭력이지 책임 있는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공연계 종사자만이 아니라 누구나 자기만의 전쟁과 고통을 겪는다. 대극장 뮤지컬 한 편당 배우·스태프는 약 200명. 공연은 관객에게 취미지만 그들에겐 생업이다. 최소 3개월을 바친 공연이 갑자기 멈추고 언제 재개될지 불투명해지자 상당수는 생계가 막막하다. ‘쿠팡맨’이 된 배우·스태프가 많다. 대학로 독백나무는 이제 햄릿보다 더 위태롭고 실존적인 독백을 듣는다. “사느냐 죽느냐”는 연극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박돈규 기자 입력 202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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