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세력은 이들만을 대상으로 ‘허구의 성(城)’ 쌓기에 총력을 기울인다. 그 가공의 시나리오 속에서는 소주성도, 경제도, 외교도 모두 성공작이며, 조국도 한명숙도 김경수도 모두 결백한 희생자다. 지지자들만 그렇게 믿으면 된다.
이를 위해 통계를 화장(化粧)하고, 별자리 잇듯이 유리한 팩트만 갖다 쓴다. 미온적인 통계청장을 바꿔버리고, 정권비리를 파헤치려 한 검사들은 죄다 좌천시킨다. 독재정권 시절에도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 영역의 자율성이 존중돼 왔던 보루 기관들마저 다 망가뜨린다.
‘성공한 정권’ 시나리오의 당초 핵심 소재는 남북 관계였으나 연락사무소 폭파 등으로 엉켜버려 이제 남은 유일한 소재는 K방역이다. 청와대가 4차 대감염을 불러온 판단 미스. 백신 부족, 청해부대 집단감염 등 그 어떤 사태에 대해서도 오류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 대통령은 정권의 성공과 안녕이 지지세력 결집에 달려 있다는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는 듯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고립무원의 상태에 처했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
핵심 지지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김대중은 노동개혁과 구조조정으로 IMF 이후 기업 경쟁력 회복의 길을 열었고, 노무현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라크 파병, 제주 해군기지를 밀어붙였다. 지지율이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그래도 그들은 대통령이기에 국가와 미래를 택했다.
문 정권 앞에도 국민연금, 노동시장, 면세 축소, 호봉제 개혁 등 비(非)인기 개혁 과제들이 수두룩했지만 다 팽개쳤다. 남은 임기에도 돈 풀기와 선거 승리용 인프라 구축에만 전념할 태세다. 정연주 씨를 방심위원장으로 밀어붙이고,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을 조기 교체하려는 것도 그런 일환으로 읽힌다.
통합 대신지지 세력만 바라보고, 나라 곳간과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들을 망가뜨린다면 이는 통치도 정치도 아니다. 그렇게 해서 높은 지지율을 유지한다 한들 역사에선 패자가 될 뿐이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202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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