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정치는 밥그릇 싸움(1)

3406 2022. 5. 28. 09:48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성호 이익이 집에서 닭을 키웠다. 한두 마리가 아니고 여러 마리였다. 닭들은 온 집을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다가 안방까지 침범했다. 방이 더러워지는 것은 둘째치고 세간살이가 남아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성호는 손을 휘저어 안방을 점령한 닭들을 쫓아내려 했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없었다. 결국 지팡이를 들고 한 마리씩 때려서 겨우 쫓아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팡이를 맞고 쫓겨난 닭들은 다시 슬금슬금 안방으로 들어왔다.

 

성호가 보기에 닭이 하는 짓은 당쟁과 똑같았다. 관리들은 벼슬과 녹봉을 탐내어 당쟁을 벌인다. 그러다 감옥에 갇히거나 귀양 가는 신세가 되기도 하고 심하면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런데도 똑같은 짓을 반복하니, 지팡이로 얻어맞을 줄 알면서도 기어이 안방으로 들어오는 닭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먹이를 다투느라 서로 물어뜯고 발로 차는 것도 비슷하다. 그나마 다른 점이 있다면 닭은 먹이를 다 먹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이좋게 지내지만, 당쟁은 도무지 그치는 날이 없고 반드시 상대를 죽여 없애 끝을 보고야 만다는 것이다. <성호사설>에 나오는 이야기다.

 

<성호사설>에 당쟁에 관한 비유가 하나 더 있다. 배고픈 사람 열 명이 있다. 그런데 밥그릇은 하나뿐이다. 열 사람이 동시에 숟가락을 얹으니 싸움이 날 수밖에 없다. 왜 싸웠냐고 물어보면 누가 기분 나쁜 소리를 해서라고 한다. 다음날도 싸움이 일어난다. 왜 싸웠냐고 물어보면 이번에는 누가 기분 나쁜 표정을 지어서라고 한다. 다음날도 싸움은 계속된다. 왜 싸웠냐고 물어보면 이번에는 누가 행동을 잘못해서라고 한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어서 그런지 끝까지 밥그릇 때문에 싸웠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싸움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 변명을 곧이곧대로 믿고서 누군가의 말을, 표정을, 행동을 문제 삼지만, 그것은 싸움이 일어난 근본적 원인을 모르고 하는 소리에 불과하다.

 

경향신문 [역사와 현실} 오피니언 2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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