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검수완박 이슈로 세상이 한참 시끄러울 때 만난 한 정치학자는 한국의 정치 환경이 전근대 시대로 퇴화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나는 그 노학자의 혜안에 언제나 감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근대 이전에는 권력의 상실이 죽음을 의미했다. 따라서 권력 다툼은 목숨을 건 투쟁이어야만 했다. 조선 시대에도 다른 견해를 가진 당파가 공존하던 시대가 있었지만, 19세기 들어 일당 독주 체제가 굳어졌다. 20세기 초 서양에서 공부한 선각자들은 선거를 통해 권력을 쟁취하고, 선거에서 패배해도 목숨을 잃지 않고 다음 선거를 준비할 수 있는 서양의 정치 제도에 매우 놀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그들이 꿈꾸던 대로 한국은 식민지 시대와 독재 시대를 끝내고 드디어 민주 사회를 이루었다. 그러나 민주 사회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다양한 의견의 공존, 열린 토론을 통한 여론의 형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 그 노학자의 진단이었다.
그 노학자의 의견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한국의 정치는 마치 오사카성과 에도성처럼 각 진영이 높은 벽을 세우고 진영 밖에 있는 자들은 공존할 수 없는 적이라고 선언하는 모양새다. 권력을 잡으면 권력을 남용하고, 권력을 잃으면 보복에 시달리고, 그래서 권력이 있을 때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성을 쌓아 두려고 한다.
진영을 장악한 이들은 진영 내 권력과 의견이 다른 이들을 배신자로 낙인찍고 매몰차게 잘라낸다. 박근혜 시대에는 친박을 넘어 진박이 나왔고 유승민이 진영 밖으로 몰렸다. 문재인 시대에는 문파를 넘어 대깨문이 나왔고 금태섭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윤석열 시대에는 윤핵관과 이준석의 다툼이 거세다. 앞서 민주당에서는 박지현이 이른바 개딸들의 표적이 됐다. 유승민, 금태섭, 이준석, 박지현에게 잘못이 있을 수 있고, 그들을 싫어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견을 말하는 자를 내부 총질을 한다며 몰아세우면 누가 권력에 거스르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미국이나 일본의 정치에도 문제가 많지만 트럼프와 대적한 공화당 의원이나 아베에 대적한 자민당 의원이 당에서 쫓겨났다는 말은 들어보기 어렵다.
노학자의 한탄을 들으며 나는 에도와 오사카에 성을 구축하고 어느 한쪽이 궤멸될 때까지 전쟁을 멈추지 않던, 주군과 다른 뜻을 개진하면 배신자로 몰살하던 그 야만의 시대가 떠올랐다. 근대 문명의 민주주의는 인간의 야만성을 순화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했지만, 우리에게는 아직도 야만의 유산이 남아 있다. 박근혜에서 문재인으로, 문재인에서 윤석열로 대통령이 바뀌었지만 우리 정치의 야만성은 여전하다. 이 야만의 시대는 언제 끝나는가?
[동아광장/박상준]2022-08-20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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