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 소설가
TV에서 4박 5일 동안 12명의 남녀가 한곳에 모여서 자신의 짝을 찾는 프로그램을 봤다.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해 원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사람과 상대에게 거절당할 것이 두려워 마음을 감추는 사람, 핑퐁처럼 마음이 옮겨 다니는 사람 등 미묘한 감정의 변화들이 가득했다. 그러다가 “싫어질 때까지 좋아하는 게 내 스타일”이라고 말하는 여성의 말이 들렸다. 상대 남성이 거절하는 건 그의 마음이니 존중하겠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내 마음’이니 끝까지 미련을 남기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고백했다가 거절당하는 두려움과 고백하지 않아서 생기는 미련 중 어느 쪽이 더 후회가 될까. 심리학에선 행동하지 않아서 생기는 후회가 더 오래 간다고 밝힌다. 후회의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도한 것은 성공이든 실패든 선택의 결과가 명확하기 때문에 비교적 감정 소비가 적다. 무엇보다 ‘자기 합리화’라는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하지만 선택하지 않은 것은 “만약 그때 내가”라는 가정법이 끝없이 과거를 소환한다. 후회는 쉽게 회한으로 바뀐다.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언제 사라지고 가벼워질까. 감정이 물이라면 컵 안의 물을 다른 곳에 따라 부으면 사라질까. 그렇지 않다. 감정은 콸콸 흘러 넘쳤을 때라야 조금씩 비워진다. 그러니 지금 누군가를 좋아해 눈물이 난다면 비워지고 있는 중이다. 그것이 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고, 사랑이 사람을 자라게 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때때로 ‘잘못된 선택’보다 ‘선택해야 할 시기에 선택을 회피’해서 불행해지기도 한다. 선택에 너무 신중하면 높은 매몰 비용 때문에 오히려 만족도가 크게 떨어지는 경우도 생긴다. 그런 역설 때문에 ‘그냥’은 최선의 선택이 되기도 한다. 남들이 뭐라든 그냥 선택하는 일도 있는 것이다. 비록 그 선택이 성공은 아니어도, 실패는 종종 알을 깨고 또 다른 세계로 나가는 길이 된다. 삶은 어제의 선택으로 오늘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생은 나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선택의 과정이다.
[백영옥의 말과 글] 2022.09.03.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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