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토목 혐오증의 좁은 생각

3406 2023. 9. 30. 11:54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작년 9월 태풍 힌남노 때 포항 냉천이 범람해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로 7명이 목숨을 잃었다. 포항제철소도 물에 잠겨 수천억 원 피해를 봤다. 당시 냉천 상류에 항사댐이 있었더라면 범람을 피할 수 있지 않았겠냐는 지적들이 있었다. 포항시는 10여 년 전부터 저수량 476만t의 중소 규모 항사댐 건설을 정부에 건의해왔다. 2016년 국토교통부의 ‘댐 희망지 신청제’ 시행 때는 주민 동의를 받아 정부에 신청했다. 하지만 2017년 환경단체들이 댐 입지 부근에 활성단층이 지나고 있다며 반대해 성사되지 않았다. 항사댐 건설이 추진됐더라도 작년 9월 시점까지 준공이 됐을지는 알 수 없다. 항사댐이 완공됐다면 힌남노 폭우에 버틸 수 있었던 것인지도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확실히 더 안전해지기는 했을 것이다.

 

항사댐 건설을 포기한 문재인 정부는 아예 신규 댐 건설 중단을 선언했다. 환경운동가 출신이 장관이었던 환경부는 2018년 9월 ‘지속가능한 물관리’란 정책 청사진을 발표했다. 2012년의 댐건설 장기 계획에 반영돼 있던 14개 댐 가운데 추진 중이던 2곳을 제외하고 12곳은 건설을 포기한다고 했다. 해수 담수화도 안 하겠다고 했다. 터무니없는 토목 기피, 과학기술 혐오였다.

 

작년 8월 극한 폭우로 빚어진 서울 강남 수해도 시민운동가 출신 서울시장이 대심도 빗물터널 건설을 백지화하지 않았다면 피해가 훨씬 줄었을 것이다. 빗물터널은 2011년 오세훈 당시 시장이 서울 7곳에 짓겠다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후임 시장은 진행 중이던 양천구 외의 6곳은 없던 일로 만들었다. 상습 수몰 지역이던 양천구 신월동 일대는 2020년 빗물터널이 완공되면서 작년 수해 때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14명 사망자를 낸 지난 7월의 청주시 오송읍 지하차도 침수 참사도 미호강 준설이 이뤄졌더라면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송 재난을 겪고 나서 환경부는 지난달 말 국가하천 19곳에서 바닥을 파내는 준설 등 하천 정비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10개 댐 신설 구상도 내놨다. 정권이 교체된 후에야 댐 건설이 ‘백지화’에서 ‘재개’로 돌아섰다.

 

문재인 정부의 하천 정책 기조는 ‘자연대로 내버려두라’는 것이었다. 금강·영산강 3개 보 해체도 이른바 ‘재(再)자연화’라는 것이다. 자연에 손을 대 가공하는 것에 질색을 한다. 준설도 하천 생물의 서식처를 교란하는 것이니 자제하자는 것이다. 탈원전도 같은 흐름이다. 과학기술의 집약체이자 거대 인프라 결집체인 원자력발전을 포기하고 자연의 햇빛과 바람 에너지로 대신하자는 것이다.

 

 

토목과 과학기술에의 혐오와 적대시는 ‘관념 환경주의’의 좁은 시각이다. 토목 그 자체가 반환경적이고, 과학기술이 비도덕적인 것이 아니다. 나쁜 토목이 있다면, 좋은 토목도 있다. 과학기술도 그 본질이 친환경이거나 반환경인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과 토목은 때로 환경을 해칠 수도 있지만, 자연과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핵심 수단이다.

 

안양천 경우 1980년대 중반 오염도(BOD)가 200을 넘나들던 시궁창 하천이었다. 백지를 물속 5㎝ 깊이만 넣어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 안양천의 최근 오염도가 2~5 수준이다. 전적으로 과학기술과 토목의 힘이었다. 유역 하수관망을 깔고 정화처리수는 다시 상류로 끌어올려 유량(流量)을 유지시켰다. 하수처리장은 지하로 넣었고 지상엔 공원을 만들었다. 그 덕분에 수십만, 수백만 유역 인구가 산책로를 낀 맑은 샛강의 혜택을 입고 있다. 서울 청계천도 다르지 않다.

 

손대지 않은 자연에서 영감과 생기를 얻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의 자연 의존성이 커질수록 환경은 더 파괴되는 수가 많다. 한국의 산이 울창하게 된 것은 나무를 열심히 심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석탄·석유·전기 등 다른 풍부한 에너지를 활용하면서 더 이상 땔감 나무가 필요 없게 된 탓도 크다. 농약과 비료, 트랙터로 작은 농지에서 풍족한 식량을 생산하면서 숲을 베어내 논밭으로 바꿀 이유도 없어졌다. 원자력발전소는 초(超)고밀도 에너지를 공급해준다. 좁은 국토를 가진 한국으로선 무엇보다 친환경 에너지다.

 

많은 사람이 자연과 어우러지며 사는 것을 동경한다. 그렇지만 자연은 늘 조화롭고 평화로운 것만은 아니다. 폭풍, 지진, 질병, 홍수 등이 모두 자연에서 비롯되는 것들이다. 토목과 과학기술은 그것들을 교정해 더 안전하고 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다. 발전이란 인간 적대적 자연 환경을 인간 친화적으로 바꿔놓는 과정이다. 댐 건설 포기, 하천 준설 반대는 복잡한 현실을 너무 단순하게 규격화해 바라보는 오도(誤導)된 토목 기피증, 토목 혐오증이다. 과학기술과 토목에 도덕의 굴레를 덮어씌워 배척할 이유가 없다. 그건 관념 환경주의라는 ‘생각의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다.

[한삼희의 환경칼럼] 23.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