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선언을 주도하고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분인 홍병기 선생은 서울 종로구 재동에서 창신동까지 홍 부자 집 땅을
밟지 않고 갈 수 없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의 많은 재산이 있었지만, 독립운동을 위해 재산을 모두 사용한 분이다.
이분의 손자인 홍재만 씨는 어린 시절부터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난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리고 13살 어린 시절부터 금속공예 공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먹고 자야 했다.
일을 배우면서 거친 선배들의 폭력에 시달렸다. 항상 배가 고팠으며 피곤해서 화장실에 숨어 잠을 자다 들켜 엄청난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흘렀다. 성인이 되면서 힘이 붙고 기술이 붙었다.
어느 날 보니 심부름을 하던 꼬마가 기술자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홍재만 씨는 모두가 인정하는 금속공예 명장이 되었다.
특히 한 장의 은판에서 부리까지 일체형으로 만들어지는 그의 은주전자는
그 예술적 가치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다.
홍재만 명장은 할아버지를 존경한다. 그리고 과거에 연연하지 않기에,
독립운동으로 사라진 재산에 연연하지 않는다.
홍재만 명장이 바라보는 것은 가족과 동료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질 작품들이라고 한다.
(옮겨온 글)
“고난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극복하면 영광은 더 크다. 노련한 조종사는 영예를 폭풍과 폭우에서 획득한다. (에피쿠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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