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강의 재자연화’란 구호

3406 2021. 2. 17. 11:07

한반도는 유달리 강폭이 좁고 유로가 짧은 산악 지형인 데다 하상계수(연중 최대 유량과 최소 유량의 차이)가 매우 높아서 하천의 수문학적 관리가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땅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준천 공사, 운하 건설, 제방 복구, 관개 사업 등 하천 관리의 기록이 적잖다. 1411년 태종은 개거도감(開渠都監)을 설치해서 하천 관리를 체계화했다. 세종 당시 준공된 청계천은 개거(開渠·수로를 만듦), 준설(浚渫·바닥을 파냄)로 유지되는 전형적인 인공 하천이었다.

그럼에도 강의 정비와 관리는 태부족이어서 수재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18세기 인구 증가로 홍수의 피해는 급증했다. 개항 이후 기록을 보면, 동시대 일본의 푸른 산림과는 대조적으로 한반도 70%의 산림이 벌거숭이 민둥산이었다. 산림의 황폐화는 홍수의 급증, 수리 시설 파괴, 농업 생산력의 급감으로 이어지는 구한말의 빈곤 트랩을 야기했다. 역사적으로 한국의 하천 관리는 지나치게 뒤늦었다.

 

‘강의 재자연화’란 구호 자체가 반문명적이고 비과학적이다. 산업 시설과 농지 면적을 그대로 놔둔 채 4대 강만 ‘자연화’한다면, 미증유의 환경 재앙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치 투쟁의 무기로서 이 구호는 놀라운 화력을 발휘한다. 대중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는 정치 선동의 효과다. ‘강이 자연’이란 잘못된 대전제 위에서 ‘보의 건설은 곧 자연 파괴’라는 소전제를 도출한 후, 4대 강 정비 사업을 ‘적폐’로 몰아가는 정치 공학의 엉터리 3단 논법이다.

 

집권 세력이야 보를 폭파해 ‘적폐 청산’의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하고 싶겠지만, 나주 지역 주민들은 “정치적 논리로 죽산보를 해체하지 말라!” “멀쩡한 보를 폭파하면 예전처럼 똥물이 흐른다”고 외치고 있다. 정치 선동은 권력 쟁취의 전술일 뿐, 국가 경영의 정책이 될 수는 없다.

 

한나라 육가(陸賈)의 경고대로, 말 위에서 천하를 쟁탈했다 해도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순 없다. 집권 세력은 정치 투쟁의 마상(馬上)에서 내려와서 두 발로 땅을 딛고 국가를 경영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흐르는 강물이 눈에 보일 것이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2021.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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