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새로운 철학을 가진 보수가 나와야 한다. 진보와 대척점에 서는 것만으로써는 참된 보수가 될 수 없다. 그동안 보수는 진보의 틀에 갇혀 북한과 통일을 안티테제로만 이해했다. 햇볕정책에 맞서 북한붕괴론을 내세우고, ‘북한 바라기’에 대응한다며 통일 불가를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수세적, 퇴행적 접근법으로는 지지세력을 확장할 수도, 한반도의 미래를 열어 갈 수도 없다.
진보가 민족의 통일을 주장한다면 보수는 가치의 통일을 강조해야 한다.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는 핵심적인 가치다. 이 가치를 외면한 민족 통일은 재앙이다. 따라서 남북이 각기 다른 제도를 가진 채 연방을 구성하자는 통일 방안은 보수의 가치에 어긋난다. 현실성도 없다. 오히려 시장을 기반으로 경제통합을 거치는 과정에서 시장경제가 제도화되도록 정책을 구상해야 한다. 최근 논란이 된 북한 내 발전소 건설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완전한 비핵화라는 조건을 충족할 뿐 아니라 북한의 시장경제화를 추동하도록 설계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 정권이 전력을 국영기업에만 공급함으로써 사회주의 경제를 복구하려 할 수 있다. 시장경제 없인 북한은 후퇴할 뿐이고 우리의 지원도 헛수고로 끝난다.
진보가 북한 정권에 공을 들인다면 보수의 정책은 주민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예를 들어 북한 비핵화에 발맞추어 개성공단이 재개된다면 북한 정권이 아니라 근로자에게 직접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를 통해 근로자는 월급의 주인이 자기이며 자신의 세금으로 나라가 운영된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투명한 조세 제도가 북한에 도입되도록 자극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정권에 돈이 들어가는 큰 경협보다 주민의 시장 활동에 도움이 되는 작은 경협이 보수의 대북 접근법에 더욱 부합한다.
청년이 북한과 통일을 묻는다면 보수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으로 보수가 거듭났다는 확신을 줄 수 있을까. 지식이 열정을 인도하고 열정이 지식을 빛나게 해야 한다. 더는 몽상 진보와 사이비 보수에게 한반도의 미래를 맡길 순 없다.
[중앙시평] 청년이 보수에게 북한을 묻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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