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당선인이 몇몇 자리의 인선을 놓고 힘겨루기 중이다. 열흘 전 후보자가 내정된 한국은행 총재직도 그런 자리 중 하나다. 대통령은 임기 내 인사권 행사의 정당성을, 당선인은 그런 ‘알박기’ 인사의 부당성을 각기 내세운다. 하지만 양측이 상식과 선의로 협의해서 진행할 일이다. 시시비비를 가릴 사안도 아니요, 당파적으로 대립할 사안은 더더욱 아니다. 이런 사실을 센트럴뱅킹의 표준 이론에 따라 살펴보자.
민주 정부는 선거로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 다음 선거 이전에 자신의 성과를 국민에게 보여야 하는 정부로서는 정책 시계(視界)가 단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통화정책에는 중장기 시계가 요구된다. 정책 효과가 실물경제에 제대로 전달되기까지 흔히 반년에서 2년 남짓한 긴 시차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통화정책을 정부가 관장하면 단기 시계에 매몰된 나머지 과도한 팽창으로 지나친 인플레를 부르기 쉽다. 「한국은행법」 제3조가 한은에 독립성을 보장한 이유다. 또한, 동 법은 대통령의 총재 임명을 규정한다(제33조 제①항). 이 조항의 의미는 선거를 거쳐 정치적 정당성을 획득한 대통령이 선출되지 않은 총재를 ‘임명’함으로써 그에게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있다. 그 외에 다른 의미는 없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당선인 중 누가 한은 총재를 낙점하는지가 마치 통화정책의 향방을 가르기라도 할 것처럼 말들이 많았다. 이는 한은 탓이기도 하다. 짐짓 내켜 하지 않으면서 정치와 악수하는 한은의 평소 모습이 국민 눈에 그리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25년 전 외환위기로 얻게 된 법률적 독립성을 이후 정책 과정에서 긴히 실천하려는 한은 스스로의 노력은 안타깝게도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미국 리치몬드연준 자료가 전하는 연준의 행동은 달랐다.
김홍범 경상국립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220404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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