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말의 의미 뒤틀어 사실 바꾸려 했던 문 정부, 대선 패배로 귀결
민주·반민주 구도였던 87년 체제는 끝나… 진실 지키는 게 시대정신
나라가 망하기 전에 말[言]이 먼저 망한다고 한다. 진(秦) 제국도 그런 사례이다. 중국 최초로 천하를 통일한 진은 불과 16년 만에 망했다. 황제 외의 누구도 생각하거나 말해서는 안 된다는 법가의 정치관이 문제였다. 생각을 담은 책을 불사르고, 말 많은 지식인을 생매장(분서갱유)했다. 환관 조고가 상황을 악화시켰다. 그는 2세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며 말[指鹿爲馬]이라고 했다. 사슴이라고 말한 신하들은 혹독한 댓가를 치렀다.
말이 망하는 것도 단계가 있다. 진시황은 단지 생각과 말을 막았을 뿐이다. 그런데 조고는 사실 자체를 바꾸었다. 푸코는 말을 사회의 기본 규범으로 본다. 즉, 말의 의미가 파괴되면 국가는 이미 안에서 무너진다. 무언가 느낌이 오지 않는가. 그렇다. 바로 오늘날 한국 정치에 만연한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 때 그 문이 활짝 열렸다.
문 정부가 전체주의였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사실과 거짓이 모호해졌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이 “젊고, 매우 솔직하며, 공손하고, 웃어른을 공경한다”고 호평했다. “진실되고 경제개발을 위해 핵무기를 포기할 것으로 믿는다”고도 했다. 한국형 원전은 비싸고 위험한 흉물이며, 태양광이 대안이라고 말했다, 소득주도성장이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을 이룬다고 했다.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그래서 말은 의미를 상실했다.
압권은 조국 사태이다. 금년 1월 대법원은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에 대한 혐의를 유죄로 판결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조국 전 장관은 사법개혁의 십자가를 진 메시아이며, 그 가족은 고난받는 신성가족이다. 얼마 전 조국 사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그대가 조국’이 방영되었다. 조국 전 장관은 “수사와 기소·재판을 통해 확인되었다고 하는 법률적 진실 뒤에 가려져 있고 숨겨져 있던, 나아가 왜곡돼 있던 진실들이 복구”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선칼럼 오피니언 2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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