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송전철탑이라는 블루오션(2)

3406 2022. 6. 4. 11:10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도시구조물에 대한 비난이 접수되면 엔지니어들은 미적 감각 없는 공학도일 뿐이라며 겸손하게 미술 전공 디자이너들을 초대하고는 한다. 그러나 디자이너들은 공학적 지식이 없는 게 문제다. 그래서 한국의 도시구조물은 방치나 장식의 양극단으로 치달았다. 경향 각지에 나비·고추·사과·두루미를 매단 육교·가로등·보가 세워졌다. 왜 필요한지 알 수 없는 곳에 굳이 현수교·사장교가 랜드마크라며 세워졌다. 무지개를 형상화했다는 다리는 여고 동창회장 명품가방처럼 도시마다 하나씩 구비하고 있는 듯하다.

 

디자인은 문제를 규정하고 해결의 형태를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잠재한 문제를 명료히 규명하기 위해 인문학적 성찰이 필요하다. 규정된 문제를 푸는 것은 변수를 정리해 나가는 과정인데 거기 미적 감수성이 개입한다. 전체 과정에서 일관되게 필요한 것은 창의력이다. 도시구조물은 조각작품이나 평면조형물과 달라서 구조역학의 지배를 받는다. 더 가볍거나 더 튼튼하거나 더 쉽게 세울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가 진화의 기본 조건이다. 좋은 도시구조물은 장식으로 덮인 것이 아니고 엄정한 구조적 논리를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물을 표현하는 찬사의 단어는 예쁘다는 것이 아니고 우아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최고의 구조물이라면 나는 비행기를 꼽는다. 극단적 조건에 대한 극단적 논리가 만든 이 구조물은 볼 때마다 전율적이다. 비행기의 모습들이 다양한 것은 문제를 규명하는 방법에 따라 최적의 형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전히 이들이 다 아름답고 우아한 것은 최적값에 근접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여기 주관적 감수성이나 자의적 취향의 장식이 덧붙을 자리는 없다. 이것이 도시구조물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교훈이고 공유하는 철학이다. 도시구조물은 그걸 세운 시대와 사회의 가치관·창조적 상상력·엔지니어링 능력 통합의 물적 체현이고 도시 속 공개증언이다. 구조적 논리가 없는 짝퉁 구조체를 장식으로 붙인 구조물들은 우리 시대에 대한 모독적 자화상이다.

 

골프연습장·송전철탑·비닐하우스·방음벽 등은 국토에 가득하되 여전히 흉물 비난의 구조물들이다. 심지어 송전철탑은 전세계 규모 시장의 구조물이다. 디자인은 문제의 인식과 규명에서 시작되니 지금의 구조체가 최적값은 분명 아니다. 여전히 지구 어딘가에서는 송전철탑을 무더기로 세워야 하고 기존 송전철탑도 내구연한 도래로 교체해야 한다. 블루오션은 생각을 뒤집는 곳에 있더라. 더 가볍고 튼튼하고 쉽게 세울 수 있는 도시구조물로 ‘K-디자인’의 이름표 달고 세계 시장을 바꿀 수 있겠다. 대통령도 바뀌고 지자체장들도 새로 뽑았으니 마침 꿈을 꿔야 하는 시기다. 이제는 도시에 유치원 장식 좀 그만두자. 우아한 도시구조물의 국토 풍경을 대한민국이 앞서서 개척해보자. 우와, 할 일 진짜 많다.

[중앙시평] 22 06. 03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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