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퇴계 이황의 향립약조 (1)

3406 2022. 6. 23. 10:04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이황은 56세 되던 1556년에 ‘향립약조(鄕立約條)’를 지었다. 이것이 후일 ‘예안 향약’으로 불리는 예안 지역의 향약(鄕約)이다. 예안은 오늘날 안동시 예안면이지만, 조선 시대에는 안동과 별개의 행정단위인 예안현이었다. 이황은 10여년 전 관직에서 스스로 물러나 고향 예안에 돌아와서 저술에 매진했다.

 

‘향약’은 흔히 계급적 관점에서 이해된다. 양반들이 자신들 삶의 공간에서 하층민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가능한 해석이고, 그런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향립약조’의 내용은 이런 맥락과 많이 다르고 오히려 정반대이다.

 

알려져 있듯이 향약의 대표적 내용은 덕업상권(德業相勸), 과실상규(過失相規), 예속상교(禮俗相敎), 환난상휼(患難相恤)이다. 좋은 일은 서로 권하고, 잘못은 서로 규제하고, 예의로 서로 사귀고, 어려운 일에 서로 돕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향립약조’는 이 중, 오직 과실상규에 대한 내용으로만 채워졌다. ‘과실상규’는 향약 내용 중, 규제와 처벌의 성격이 가장 강한 규정이다. 얼핏, 향약에 대한 계급적 인식에 부합하는 듯 보인다. 그런데 ‘향립약조’ 총 33개 조항에서 29개가 ‘선비’ 즉 양반들에 대한 내용이다. 향립약조는 평민들이 아닌 지배층인 ‘선비’들에 대한 규제를 담고 있다.

 

이황이 향립약조에서 규제한 행동 유형 몇 가지를 들어보자. “망령되이 위세를 부려 관청을 소란스럽게 하고 마음대로 하는 자” “염치를 돌아보지 않고 사풍(士風)을 더럽힌 자” “강함을 믿고 약한 자를 능멸하며 사납게 행동하여 싸움을 일으키는 자” “염치없이 막 되먹은 자들과 붕당을 만들어 난폭한 짓을 많이 하는 자” “헛된 말을 조작하여 남을 죄에 빠뜨리는 자” “관청의 임명을 받고 공무를 빙자하여 폐단을 일으키는 자”들이 그들이다.

경향신문 22. 06. 16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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