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주필
사람은 교육으로 길러지고 정치인은 선거로 성숙된다고 한다. 이 칼럼에서 여러 번 썼지만 필자는 정치를 물리학만큼이나 어려운 분야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어려운 정치를 사람들은 흔히 얕본다. 운 좋게 일이 잘 풀려 당선된 초선 의원은 정치를 우습게 여기곤 한다. 어느 당의 초선 의원 108명이 하도 사고를 쳐 ‘백팔번뇌’라고 불린 것은 이유가 있다. 초선 의원은 그러다 몇 번 큰코다치는 일을 당한 뒤 임기가 끝날 때쯤에야 자신의 정치에 대한 무지와 경솔을 후회한다. 한심하게 보이던 정치 선배들을 인정하게 되는 것도 그때쯤이라고 한다.
초선을 정치인으로 성장시키는 것은 ‘선거’라는 무서운 관문이다. 선거는 정치인으로 하여금 대중(大衆)의 시선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다. 정치인으로서 이 눈을 뜨지 못하면 표를 얻을 수 없다. 정치적인 눈을 가진 사람들은 한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언제나 대중의 시선을 의식하며 두려워하는 마음가짐, 몸가짐이 생활화돼 있다. 정치인이 대중의 뜻만 따르면 정치인과 대중이 함께 망하고, 정치인이 대중의 뜻을 거스르면 대중이 정치인을 망하게 만든다고 한다. 대중이라는 거친 바다에서 순풍과 역풍을 다 맞아본 정치인은 자나 깨나 대중의 풍향과 파고를 살필 수밖에 없다.
군정 종식 이후 우리 대통령 전원이 선거 유경험자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모두 많건 적건 선거를 치렀던 사람들이다. 선거에 연속 당선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김대중, 노무현처럼 선거 패배를 달고 산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선거를 통해 대중의 정서를 알고 함께 호흡하는 나름의 행동 양식을 체질화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런 우리 대통령 역사에서 희귀한 존재다. 지난 3월 대통령 선거가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 선거였다. 대통령으로서 지방선거를 치렀고 2024년 총선도 있지만 자신의 선거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도 대선에서 많은 곡절을 겪었지만 선거 자체로만 보면 ‘초선’이다. 그것도 다음 선거가 없는 초선이다. 처음이자 마지막 당선이 갑자기 벌어진 ‘사건’ 같은 것이었다.
임기 초반을 보면 윤 대통령에게 아직 ‘정치적인 눈’이 생기지 않은 것 같다. 정치를 가볍게 여긴다는 인상을 받는다. 정치와 선거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면 윤 대통령처럼 매일 기자들과 출근길 문답을 하는 것이 큰 모험이란 것을 안다. 꼭 해야 한다면 사전에 준비할 것이다. 솔직한 것은 미덕이지만 감정이 드러나지 않고 진중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매일의 이 모험을 즉흥적인 ‘개인기’로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정치는 결코 그렇게 쉽지 않다. 대통령실에 이런 정치를 아는 사람도 너무 적다.
양상훈 주필 shyang@chosun.com 22. 07. 21.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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