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성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의 뉴욕발 거친 언사가 22일 오전 한 방송사의 현장영상 공개로 국내에 알려진 지 15시간이 지난 그날 밤, 대통령실이 내놓은 해명은 기자에게 흥미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대통령이 두 차례 비속어를 쓴 점은 인정하나 우리 국회를 염두에 둔 '날리면'이란 표현이 '바이든'으로 왜곡됐다는 것인데, "다시 한 번 들어봐 달라"는 김은혜 홍보수석의 대국민 읍소를 따랐더니 대통령 발언이 오전과는 사뭇 다르게 들리는 것이었다. 이후 SNS상에선 대통령실 해명을 두둔하는 이들과 '국민 청력을 시험하느냐'고 비판하는 이들이 북새통을 이뤘다.
□ 우리가 '들리는 대로 듣는 게 아니다'라는 사실은 이젠 과학적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신경과학 분야의 최신 연구 성과에 바탕 한 교양서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리사 펠드먼 배럿 지음)을 참고하자면, 우리 뇌는 청각, 시각, 후각, 촉각 등 감각 정보를 해독할 때 '기억'을 십분 활용한다. 바로바로 들어오는 모호한 정보에 의존해 상황을 파악하려다간 제때 적절한 반응을 하기 어려운 만큼, 기존 입력 정보를 동원해 어떤 상황인지를 '예측'한다는 것이다. 이때 감각 정보는 뇌가 미리 상정한 가설을 확인하는 데 쓰인 뒤 버려진다.
□ 이처럼 뇌는 감각 정보가 도달하기도 전에 주변 변화를 실시간 감지한다. 책은 직관적 이해를 돕고자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시는 일을 예로 든다. 물을 마시면 곧바로 갈증이 줄어드는 게 보통의 경험이지만, 사실 물이 혈류에 도달하려면 20분 정도가 걸린다. 몸에 수분이 보충되기도 전에 갈증을 해소해주는 건 뇌의 상황 예측 작용이란 것이다. 저자 배럿은 일상적 경험이란 궁극적으로 뇌가 주의 깊게 만들어낸 '환각'이라고 말한다.
□ 대통령이 실제 뭐라고 했는지는 본인만이 알 일이지만, '바이든'과 '날리면'으로 갈린 저 시비에 청력 이상의 요소가 개입됐다는 점은 과학이 입증하는 바다. 우리는 믿고 싶은 바에 사로잡혀 같은 소리도 다르게 듣는 어쩔 수 없는 존재일까. 이에 배럿은 "오늘의 행동은 내일 뇌가 내놓을 예측"이라며 "당신에겐 새로운 방향으로 예측하는 뇌를 길러낼 자유가 있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평선] 이훈성 논설위원 (hs0213@hankookilbo.com)22. 09. 25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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