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자유시장경제 누가 흔드나

3406 2022. 10. 3. 09:49

황인혁 디지털뉴스부장

 

자유주의는 유럽 르네상스 시대를 기점으로 널리 형성된 사상이다. 르네상스의 근본정신은 휴머니즘(humanism·인문주의)으로 '보다 인간답게 만드는 일'이라는 뜻의 '후마니오라'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자유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고전학파 애덤 스미스로 이어졌다. 사적 이윤 추구, 직업 선택의 자유를 인정하고 각자의 경제활동을 자유롭게 방임한다면 최대의 부(富)를 생산할 것이라고 믿었다. 미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도 자유의 가치가 인류를 풍요롭게 만들며 개인의 자유가 자유시장경제를 통해 보장될 수 있다는 점을 그의 책 '선택할 자유'에서 강조했다.

 

인간의 자유 의지가 충분히 발현되고 보장될 때 인간다운 세상이 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서방국가들의 비약적 발전과 6·25전쟁 폐허에서 다시 일어난 한국의 재기 사례를 통해 자유시장경제의 필요성은 차고 넘치게 검증됐다. 자유경쟁의 토양에서 일류 기업이 탄생하고 경제가 활력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핵심 가치가 홀대받는 사례가 속속 포착돼 우려를 낳고 있다. 그것도 취임사, 광복절 축사, 유엔총회 연설에서 자유의 가치를 수십 번 강조한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초반에 불거지고 있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예를 들어 초·중·고 교과서의 토대가 될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서 자유경쟁과 자유시장경제라는 단어가 빠지고 경제정의, 소득분배, 노동자 권리가 부각된 점은 개탄할 일이다. 문재인 정부 때 구성된 연구진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가 기존 교육과정에 포함돼 있던 '자유경쟁' 내용을 유지해야 한다고 교육부에 시정을 요구했을 정도로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학생들이 균형 잡힌 경제 시각을 기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굳이 있던 단어까지 뺀 저의마저 의심하게 된다.

 

개정 시안에는 '빠른 경제성장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조사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는데 학교 수업 때 불공정과 빈부격차의 폐해를 편향되게 강조하는 건 아닌지 노파심이 든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경제교육의 절대량이 부족한 마당에 지식의 편향성까지 초래한다면 용납하기 어렵다.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경제의 기본은 동기부여에 따른 시장경제"라고 단언했다. 미래 세대에게 균형 잡힌 경제관을 가르치는 건 부모 세대의 책무다.

 

최근 야당이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는 양곡관리법 개정안도 자유시장경제를 흔드는 행위다. 쌀 소비량은 급격히 줄어드는데 생산량은 늘어 쌀 가격이 뚝 떨어지자 농민들이 논을 갈아엎는 실력행사에 나섰다. 이에 성난 농심을 의식한 야당이 남아도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라면서 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이미 시장격리와 공공비축미 제도를 통해 쌀값 안정책을 취하고 있는 정부가 남는 쌀을 의무적으로 사들여야 한다면 해마다 수조 원의 혈세가 쌀 매입에 투입될 수 있다. 시장의 가격과 자유로운 수급 조절 기능은 무너질 게 뻔하다.

 

더구나 쌀 재고 매입을 법으로 의무화하게 되면 배추, 무, 양파, 고추 등 다른 작물과의 형평성 문제도 봇물처럼 터져 나올 수 있다. 정부가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 그걸 알면서도 '정부의 손'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것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의 효능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마침 공익포럼 오래포럼이 26일 개최하는 '자유주의 시장경제 포럼'을 매일경제가 후원하는 것도 국민들이 자유와 시장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너무나 소중하지만 물과 공기의 존재를 잊고 사는 것처럼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없는지 되새겨보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

 

자유시장경제는 흔들려서는 안 될 근본 가치다. 한국이 어떻게 세계 톱10의 경제대국이 됐는가.

[매경데스크] 오피니언 22. 0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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