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한 사람 때문에 여덟 사람이

3406 2022. 11. 10. 12:27

“한 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여덟 명이 위험을 감수해야 할 상황에서 대원들은 과연 ‘라이언 일병 한 명의 생명이 여덟 명의 생명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큰 혼란에 빠진다.”

최성수 저(著) 《영화관에서 만나는 하나님》 (이화, 131쪽) 중에 나오는 구절.

 

2차 세계 대전. 라이언 가문은, 네 형제가 모두 전쟁에 참전했는데, 막내만 제외하고 모두 전사했다. 미행정부는 제임스 라이언만이라도 살려 보내는 것이, 그 어머니를 위로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여, 공수부대 밀러 대위에게, 적진 한가운데 있는 라이언 일병을 구하라는 명령을 하달한다.

 

밀러 대위는 대원 7명을 데리고 떠난다.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여덟 명의 목숨을 걸어야 합니까?”

대원들은 작전의 정당성에 의구심을 품는다.

 

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자가 나온다. 이 이야기에는 두 가지 의문점이 있다.

첫째, 맹수와 도적의 위협이 있는데, 아흔아홉 마리를 방치한 채,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일이 합당한 일인가?

둘째는, 잃은 양을 찾은 후, 그 양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든 잔치를 벌인 점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잃은 양 한 마리의 비유’도 공리주의(功利主義) 입장에서 비추어 보면, 말도 안 되는 처사이다. 이 이야기는 모두 ‘한 사람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다. 충성을 다한 한 사람을, 국가는 최선을 다하여 존중하고 있는 것이다. 라이언 일병과 그 형제들은 충성스러운 군인이었다.

 

그러나 잃은 양 한 마리 같은 우리는 아무런 공로도 없는 ‘찌질 한 일병’ 같은 존재였다. 그런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은, 마치 이 우주에 나 한 사람만 있는 양, 우리를 찾아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다.

(옮겨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