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유배당한 정약용​

3406 2022. 12. 6. 10:16

다산 정약용은 조선의 천재였다.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으나 정조가 죽고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천주교 신도였던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당했다. 인생 황금기인 40~50대를 감옥 같은 유배지에서 18년을 보냈다.

 

그의 유배가 이리 길어진 이유는 암행어사 시절 서용보의 비리를 정조에게 고발했는데 서용보가 정계로 복귀해 실세가 되면서 정약용의 사면을 극렬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유배였지만 다산은 그곳에서 목민심서 외 무려 50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정약용에게 유배지는 감옥이 아니라 다산학의 성지였던 것이다.

 

감옥 같은 환경도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감옥이 될 수 있고, 반면 나를 거듭나게 하는 성스러운 곳이 될 수 있다. 저도 훗날 이곳을 돌아볼 때 감옥이 결코 아니었음을, 이 시간이 실종된 시간이 아니었음을 드러내고 싶다.

​문혁 목사(좋은나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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