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달호(에세이스트·편의점주)
100명에 이르는 아침 수영 강습반에서 완전 생초보인 맥주병은 그와 나, 둘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참 어설픈 사람이었다. 같은 초보의 시선으로 봐도 그의 수영 동작은 깔깔깔 웃음이 나올 만했다. 손이 움직이면 발이 멈추고, 발이 움직이면 손이 멈추고, 둘 다 움직이면 호흡이 멈추고…. 몸치-박치-음치, 쓰리 콤보로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을 구경하는 느낌이랄까. 어쩜 저리 수영을 못할까.
열흘쯤 지나자 그는 풀이 죽은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물속에서 걷는 법부터 같이 배웠던 나는 팔다리 동작 떼고 킥판 놓고 호흡하며 몇 m쯤 나아가는데, 그는 여전히 팔다리, 머리, 몸통이 따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가 물었다. “혹시 과외 교습 같은 것 따로 받으세요?” 빙그레 웃었다. “아뇨.” “그럼 섬에서 태어나 자랐습니까?” 유머 감각은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동작을 가다듬으며 레인을 돌고 있으면 그는 한쪽 구석에서 난간을 붙잡고 머리를 담갔다 올렸다, 다시 호흡 연습을 하고 있었다. 풀 밖에 나가 허공에 양팔을 휘젓는 연습을 해보고, 찰방찰방 다리 흔드는 연습도 다시 했다. 그럼에도 물속에만 들어가면 삼위일체가 아니라 삼위각(各)체. 여전히 따로 움직였다. 어쩜 저런 사람이 다 있지?
보름쯤 지났을까. 호흡 연습만 하는 그를 강사가 불렀다. “저쪽 풀장으로 가세요.” 강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초보 반에서 어느 정도 배워야 들어갈 수 있는 성인 풀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허벅지 높이쯤 닿는 유아 풀에서만 연습하고 있었다. “저길요?” 눈을 동그랗게 뜬 그가 물었다. “얕은 물도 어려운데 깊은 물에서 어떻게?” 강사가 떠밀었다. “일단 한번 가보세요.” 벌칙을 수행하는 표정으로 느적느적 성인 풀로 향했다.
그날 우리는 따로 연습했다. 힐끔 보니 그는 완연한 낙지처럼 흐느적거렸고, 25m 레인을 정체시키는 빌런이 돼 있었다. 강습을 마칠 때 강사가 물었다. “어떻던가요?” 알듯 말듯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가 말했다. “이상하게도 힘이 덜 드네요.” “맞아요, 깊은 물은 부력이 좋아 힘이 오히려 덜 듭니다.” “그런데 왜 굳이 얕은 물에서 초보자를 연습시키는 겁니까?” 그답게 물었다. 강사가 답했다. “동작을 정확히 익혀야 하니까요.”
깊은 물에서 수영하면 힘이 덜 들고 도리어 빨리 배울 수도 있지만 정확한 동작을 익히려면 얕은 물에서 충분히 반복 훈련을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왜 저를 깊은 물에 보내셨어요?” “며칠 전부터 힘들어 하시는 것 같아서요.” 그가 수영에 흥미를 잃을 것 같아 일종의 분위기 전환 차원에서 성인 풀로 보냈다는 뜻이다. 강사는 “내일 또 보십시다”라며 손을 흔들었다. 그날 이후 그는 종종 성인 풀로 보내졌고, 뭔가에 쫓기듯 팔다리 호흡이 따로 노는 모습은 여전하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수영반에 나오는 집념을 보이는 중이다.
조금 늦된 사람이 있고, 아주 늦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예 못하는 사람은 없다. 수영이든 운전이든 악기를 연주하는 일이든 그렇다. 다른 사람이 할 수 있으면 당신도 할 수 있는 법. 다만 내가 이것을 하겠다는 마음의 끈만 놓지 않기를! 얕은 물, 깊은 물 오가며 즐기면 되는 거니까.
오늘도 그는 수영장에 왔다. 나는 자유형 떼고 배영을 배우는 중이지만 그는 아직 움-파-움-파 호흡 연습만 계속하며 레인을 오간다. 엊그제는 샤워장에서 만났다. “숨 쉬는 일이 이리 힘든 줄 몰랐네요. 허허허허허.” 언젠가 물개가 돼 바다를 누빌 그를 기다린다. 하긴 이 나이에 수영을 잘해 국가대표가 될 것도 아니지 않은가. 느릿느릿 천천히 배우면 되는 일이다. 얕은 물, 깊은 물 오가면서, 꾸준히.
[청사초롱] 봉달호(에세이스트·편의점주)23.06.21.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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