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5·18 정신 모독하는 집권층의 위선

3406 2020. 11. 21. 11:15

‘5·18 신성화’가 이뤄지려면 최소한 두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사건 실체에 대한 철저한 규명을 통해 관련된 의혹 모두가 해소되어야 하고, 진상 규명을 근거로 그 역사적 의의가 외세에 대한 거족적 저항인 3·1운동이나 국기 문란의 선거 부정에 대한 범국민적 저항인 4·19의거보다 상위에 있다는 점을 국민 대다수가 승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절차가 없는 ‘5·18 신성화’란 ‘5·18 정략’일 뿐이다.

 

특정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강압적 신성화 정략은 중세 신정 체제나 20세기 초 전체주의에서나 가능하다. 권력 집단이 피치자들의 정치 의식을 철저히 세뇌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운영하는 사회적 소통 수단이 무한하게 열려 있는 이 시대에 그런 정략은 시대착오적이고, 무엇보다 국가 발전 저해 행위이다.

 

5·18 정신이 대변하는 자유민주주의 헌정 체제의 핵심은 사고의 개방성에 있다. 모든 문제를 자유로운 탐색, 철저한 사실 규명, 진지한 토론, 공개적 논박으로 해결하려는 태도이다. 그런 과정에서 정책의 합리성이 증대되고, 국민의 정신 능력 및 창의성이 함양되며, 역사적 사건의 의미나 가치가 자연스레 국민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된다. 집권층이 혐오하는 ‘5·18 망언’이 유포된다면 그런 과정을 통해 그 부당성과 허구성을 입증하면 된다. 망언은 입법에 의한 강제가 아니라 통렬한 비판에 의한 공개적 망신으로 퇴치된다.

 

현 집권층은 과거 온갖 저급한 언행도 표현의 자유라는 원칙을 내세워 줄기차게 옹호한 바 있다. 굳게 신봉한다는 원칙을 갑자기 저버리는 인간은 대체로 다음 세 가지 유형에 속한다. 그 원칙 자체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는 지적(知的)으로 허망한 인간, 그 원칙이란 것이 대중적 인기 등 범속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겉치레일 뿐인 진정성 없는 인간, 타인의 시선 밖에서는 그 원칙과 다르게 행동하는 위선적 인간이다. 현 집권층이 그런 유형의 인간이 아니라면, 5·18 정신을 모독하는 5·18 정략은 철회해야 한다.

(양승태 이화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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