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20대가 586 권력을 몰아낸다 (1)

3406 2021. 4. 26. 10:15

(전략) 지는 해처럼 한국의 586 세대가 기울고 있다. 586 운동권 정치 집단의 몰락이다.

 

한국의 586은 운이 좋았다. 세상에 나올 때 그들은 전쟁의 참화와 보릿고개를 슬쩍 비켜갔다. 또 중국을 피해 한반도에 태어났고, 북한이 아니라 남한에서 귀가 빠졌다. 그들이 한국서 자랄 때, 중국에선 인류사 최악의 대기근이 발생했다. 문화혁명 ’10년의 대동란'이 뒤따랐다. 북한의 인민은 인간의 기본권을 잃고 전체주의 정권의 노예로 전락했다. 홍위병 세대와 김일성 키즈에 비해 한국의 586 세대는 행운아들이었다. 586의 부모 세대는 빈곤의 늪을 헤치고 나와 독일의 광산과 요양병원에서, 아라비아 열사와 인도차이나의 밀림에서 목숨 걸고 외화를 벌어 고향에 송금했다. 고난에 굴하지 않는 그 시대의 정신을 미당(未堂)이 노래했다.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물론 586도 역사의 짐을 졌다. 1980년대 그 세대는 군부 독재에 맞서 “가열 차게” 싸웠다. 급기야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이끌고 민주화의 활로를 열었다. 거기까지가 그들의 시대적 소명이었다. 이후 586 운동권의 일탈이 시작됐다. 대학가엔 마르크스, 레닌, 마오쩌둥, 김일성 관련 서적들이 넘쳐났다. 톈안먼 대학살이 일어나고 구소련의 붕괴가 임박했지만, 그들은 눈뜬 청맹과니였다. 김일성을 숭배하던 주사(NL)파는 당시 대한민국이 ‘식민지 반(半)봉건사회’라 우겨댔다. 레닌을 흠모하는 민중민주(PD)파는 한국이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라 외쳐댔다. 자주파가 “반전반핵 양키 고 홈!”을 외치면, 민중파는 “통일 논의 환상 속에 우리 민중 죽어간다!”며 부딪쳤다. 전 세계 공산정권이 줄도산을 할 때도 그들은 민족해방과 민중혁명을 부르짖고 있었다.

 

586 운동권의 자유분방한 이념적 일탈은 그 당시 취업률로 쉽게 설명된다. 외국어 실력이 부족해도, 성적표에 쌍권총이 달려 있어도 졸업 후 그들에겐 일자리가 넘쳐났다. 30년간 지속됐던 한국 경제의 고성장 덕택이었다. 그들은 어렵잖게 좋은 직장을 잡았고, 몇 년 아래 후배들과 달리 1997년 경제 위기도 피해가는 행운까지 누렸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역사학 2021.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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