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다음에 털어먹을 게 남긴 할지 모르겠다

3406 2021. 5. 29. 10:16

 

(전략) 요즘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들이 청년들에게 뭉텅이 현금을 쥐여주자는 약속을 쏟아내고 있다. 4·7 재·보궐선거에서 이반현상이 뚜렷해진 20대, 특히 ‘이대남’을 어르려는 거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대학 안 가는 청년들에게 해외여행비 1000만 원을 지원해 주는 건 어떤가”라고 제안했고,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제대할 때 사회출발자금 같은 것을 한 3000만 원 장만해 드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출생 때부터 20년간 국가가 적립해 사회초년생이 될 때 1억 원짜리 통장을 만들어주자고 한다.

 

올해 성년을 맞은 청년이 49만7000여 명. 어림셈만 해봐도 매년 수조∼수십조 원이 필요한 공약들이다. 성년의 날을 맞아 민주당 지도부가 연 간담회에서 청년들은 “더 이상 이런 공약에 속아 표를 주진 않는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이런 말을 좀처럼 믿지 않는 게 정치인들의 속성이다. 선심성 공약일수록 무리해서라도 지키려 하는 게 더 문제다.

 

다만 공약의 실현을 가로막을 장벽은 높아지고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이 현 정부에서 폭증한 나랏빚이다. 빚을 내 돈 쓰는 일이 습관화된 영향으로 내년 말 국가채무는 1000조 원을 넘는다. 최근 취임 4주년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적극적 확장재정”을 강조한 만큼 남은 1년도 흔들림 없이 돈을 풀 것이다. 코로나 위기에서 벗어나면 주겠다는 대통령의 ‘전 국민 위로금’ 약속도 살아 있다.

 

그런데 경고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한국의 신용등급을 제일 먼저 떨어뜨렸던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최근 “한국의 국가채무가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며 재정 규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절제된 표현을 쉽게 풀면 “지금처럼 써대다간 머잖아 신용등급이 떨어질 것”이란 경고다. 게다가 미국 경제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긴축 시기가 빨라지고 있다. 다음 정권을 누가 잡든 지금처럼 재정 털어먹기를 계속하다간 임기 내 경제 파탄을 각오해야 한다. 청년에게 쥐여준다는 돈도 결국 청년들이 평생 세금으로 갚아야 할 빚과 이자만 늘릴 것이다.(후략)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21. 05.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