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지도층 부패와 軍 기강 해이가 만든 비극(1)

3406 2021. 9. 4. 09:40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났다. 탈레반이 20년 만에 카불로 돌아왔다. ‘좋은 훈련을 받고 훌륭한 장비로 무장했으나, 싸울 의지가 없었던 정부군’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미군 철수와 탈레반 진격 소식에 싸워보지도 않고 무기를 내려놓았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재빨리 국외로 도망쳤다. 거액의 돈을 챙겼다고 한다. 너무나 빠르고 허망한 아프간 정부와 정부군의 붕괴에 세계가 놀랐다. 미국이 쏟은 돈이 2600조 원에 달하고, 정부군의 훈련과 장비에 100조 원을 썼다니 더욱 그렇다. 2400명의 전사자를 남기고 떠나는 미국도 당혹스러워했다.

 

가난이 탈레반 같은 종교적 극단주의를 뿌리내리게 했고, 종교적 극단주의로 인해 더욱 가난해진 것이 아프간 현대사의 모순이자 슬픔이다. 전쟁은 끝났으나 불행은 시작되었다. 특히, 여성과 아이들에게. 카불 공항의 모습이 그 징표다. 어린 자녀들과 망연자실 활주로에 주저앉은 여성들. 비행기에 매달렸다 공중에서 떨어진 사람들. 아비규환의 현장이고 생지옥이 따로 없다. 인권과 문명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탈레반에 대한 공포와 생존을 위한 탈출의 절박함이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카불 공항 모습은 낯설지 않다. 1975년 베트남이 패망하고 사이공을 탈출하는 헬기를 타려는 사람들로 미국대사관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륙하는 헬기에 사력을 다해 매달리던 사이공 시민들을 다시 보는 듯하다. 공산화된 베트남을 탈출하기 위해 가족과 바다로 향한 보트피플이 100만 명을 넘었다. 배가 전복해 죽거나 해적에게 살해된 사람이 10만 명에 달했다. 이젠 아프간에 남은 사람들, 특히 여성과 아이들의 생명과 안전과 인간적인 삶을 위해 탈레반이 달라졌기를 소망해 본다. 한국 정부의 현지 재건 사업을 돕던 조력자와 가족들은 기적처럼 한국에 입국했다. 하지만 카불 공항 폭탄 테러가 벌어지면서 사상자들이 나왔다. 자살 폭탄 테러로 민간인을 겨냥하는 악몽이 이어지면 아프간에 희망은 점점 줄어든다. 인류애를 향한 국제사회의 분발이 간절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베트남과 아프간에는 46년의 시차를 넘어 공통점이 있다. 지도층은 부패해 민심이 떠났다. 군대 기강은 무너졌다. 평화와 협상을 외치면서, 위험 신호에는 눈을 감았다. 위기가 닥쳤을 때 누구도 희생과 헌신을 생각하지 않았다. 싸우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값비싼 무기도 고철에 불과하다.

김경수 객원논설위원·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21.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