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이름도 병이 든다

3406 2022. 7. 13. 10:10

김택근 시인·작가

 

(전략) 더위에 지친 여름이 혀를 빼물고 헐떡이지만 나랏일 하는 저들은 부와 명성을 얻으려 종종걸음을 치고 있다. 현자들은 어디로 숨었는가. 지혜가 사라진 자리에는 천박한 지식이 똬리를 틀고 있다. 높은 자리에 오르는 인물의 자질과 품격을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인간은 마지막까지 이름으로 존재한다. 누구나 이름으로 기억되고 끝내 이름 하나를 남긴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으려 노력한다.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아야 하는 수도승들도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는 것이 자신의 이름이다. 그 이름을 스스로 지우는 데는 고통이 따른다. 이름에 붙어 있는 만(慢)을 없애야 비로소 이름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자만은 남과 비교하는 마음을 없애야 사라진다. 성철 스님은 이름의 무서움을 이렇게 설파했다.

 

“실제로 재물병과 여자병은 결심만 단단히 하면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름을 날리면 이름병에 걸리고) 이름병에 걸리면 남들이 다 칭찬해주니, 그럴수록 이름병은 참으로 고치기 어려운 것이다. 책을 좀 보아서 말주변이 늘고 또 참선이라도 좀 해서 법문이라도 하게 되면 그만 거기에 빠져버리는데, 이것도 일종의 명예병이다.”

 

이름은 태어나 줄곧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크고 작은 이름을 얻으면 그 이름으로 살아간다. 죽어서도 이름은 남는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이름 감옥’에 갇혀 살고 있는 셈이다.

 

이름은 내 것이되 내 것이 아니다. 남이 불러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로부터 자유를 얻으려면 마지막에 자신의 이름을 버려야 한다. 내 이름이 내 것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 ‘이름 감옥’을 벗어나 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나는 ‘아무개’라고 제법 목에 힘을 주던 사람도/ 가을 잎 지듯 그렇게 죽고 나면/ 그 이름만이 뒤에 남아 홀로 떠돌 것이다.”(숫타니파타)

 

잊혀지고 싶다면서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 머리통이 작은데도 큰 감투를 써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 국민과의 약속을 아무런 설명도 없이 팽개치는 사람, 앞에서는 정의를 외치면서 거짓말로 사법부 전체를 망치는 사람. 돌아보면 건강한 이름이 드물다. 스스로 버리지 못하고 남에게 버림을 받는 이름은 얼마나 초라한가. 그 이름은 홀로 떠돌다 바스라질 뿐이다.

 

듣기도 보기도 싫어 저녁에 버린 이름들이 자고나면 다시 솟아난다. 그들은 잊혀짐을 두려워하고 있다. 세상에서 지워질까봐 안간힘을 쏟는다. 쌓인 것이 많을수록 그것을 지키려고 이름들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싸우고 있다. 아무리 인걸들의 무용담이 사라진 시대라지만 지금의 유명인들은 참으로 왜소하다.

 

문득 이름 없이 스러진 사람들을 생각한다. 자신의 이름이 있지만 스스로도 불러보지 못하고 그냥 어머니, 아버지로 살았던 우리 시대 무명씨들, 보이지 않게 공덕을 쌓고 이름과 함께 사라진 사람들. 그들이 나라를 일으켜서 여기까지 끌고 왔다. 이제 유명인들은 거울에 자기 이름도 비춰볼 일이다. 혹시 이름에 오물이 묻어 있지 않은지, 상한 데는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처음에는 바보 같지만 부를수록 정이 가는, 날카롭지만 볼수록 믿음이 가는 이름을 기다린다. 부르면 가슴 설레는 이름, 그 이름을 부르며 미혹의 시대를 건너가고 싶다.

경향신문 김택근의 묵언 22. 07.09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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