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아픔을 함께 이겨내는 법

3406 2022. 12. 14. 10:37

지나영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소아정신과 교수

 

온 국민이 황망하게 생을 마감한 젊은이들을 애도하며 지난 2주를 보냈다. 먼저 큰 고통 속에 있을 유가족 분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생존자, 경찰, 응급 구조원 등 현장에서 힘든 시간을 겪은 분들에게도 심신의 빠른 회복을 기원한다.

 

이 시기에 슬픔, 충격, 분노, 불안, 죄책감 등 복합적 감정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피로, 식욕부진, 불면, 통증 같은 신체 증상도 뒤따를 수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을 통해 구체적인 영상을 본 사람들도 비슷한 증상을 보일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접한 어린이나 청소년은 분리불안, 집중력 부족 등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런 큰 사건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연스럽게’ 생활하기가 쉽지 않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몇 가지 도움의 말을 전하고 싶다.

 

우선 슬픔과 분노, 그 자체를 부정할 필요가 없다. 감정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이렇게 슬프구나, 화가 나는구나’ 하고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고 다독이면 된다. 마음이 불안정할 땐 코로 4초 들이쉬고 입으로 4초 이상 내쉬는 심호흡과 명상이 도움이 된다. 또 부정적 감정을 유발할 수 있는 재난 관련 영상의 반복 시청은 피하고 수면과 식사 등 루틴은 지키는 게 좋다. 이런 노력에도 사고 장면이 자주 떠오르고 불면 등 증상이 지속되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아닌지 전문가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아동과 청소년은 더 세심히 돌봐야 한다. 우선 아이가 사고에 대해 알고 있는 부분을 파악한 뒤 생각과 감정을 경청한다. 사고에 대해 질문을 하면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 큰 사고가 났어. 많은 사람이 다치고 돌아가셨어”처럼 발달 단계에 맞게 설명해 준다. 어떠한 질문도 괜찮다고 격려하되 구체적인 사고 장면은 묘사하지 않는 게 좋다. 아이가 사고가 또 일어날까 봐 불안해하면 “안전을 위해 어른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어. 엄마 아빠도 너를 잘 지켜 줄게”라고 안심시킨다. 또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불안 요소가 없는 환경을 제공한다.

 

가까운 이를 잃고 애도하는 시기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힘들다. 이 시기에는 지인들이 곁에 있어주기만 해도 정서적으로 큰 위안이 된다. 사회적 재난으로 인한 아픔도 비슷하다. 가까운 이들의 지지가 마음을 지탱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사랑하는 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서로가 겪는 감정을 나누자. 그리고 세상을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도록 노력하자. 살아남은 사람들이 꼭 해야 할 의무일 것이다.

[지나영의 마음처방] 지나영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소아정신과 교수

22.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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