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7년 도버해협 양쪽 두 나라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 때의 일이다. 1년 가까이 영국의 공격을 막던 프랑스의 북부도시 칼레는 원병을 기대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결국 백기를 들었다. 항복 사절은 도시 전체가 불타고 모든 칼레의 시민이 도살되는 운명을 면하기 위해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하였다.
완강한 태도를 보이던 영국 왕의 태도가 차츰 누그러져 이렇게 명하였다. “좋다. 칼레시민들의 생명은 보장하겠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동안의 어리석은 반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한다. 칼레의 시민을 대표하는 6명은 교수형에 사용할 밧줄을 목에 걸고 맨발로 걸어 내 앞에 나와야 한다.”
시민들은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다. 누군가 6명이 그들을 대신해 죽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때 용감하게 나선 6명이 있었다. 모두 그 도시의 핵심인물이며 절정의 삶을 누리던 부유한 귀족이었다.
칼레에서 가장 부자인 위스타슈 생 피에르가 가장 먼저 희생을 자원하자 장 데르, 자크 드 위상, 장 드 피에네, 피에르 드 위상, 앙드레 당드리에 등이 영국 왕에게 바치는 칼레시의 열쇠를 들고 밧줄을 목에 건 채 맨발로 나섰던 것이다.
하지만 처형되려던 마지막 순간 에드워드 3세는 임신한 왕비의 간청을 듣고 그 용감한 시민 6명을 살렸다.
550년이 지난 1895년 칼레시는 조각가 로댕에게 그 용감한 6명의 칼레시민들을 위한 기념동상을 주문했다. 바로 로댕의 ‘칼레의 시민’이다. 비장한 슬픔으로 얼룩진 이 조각상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교훈을 남겨주는 동시에 한 알의 밀이 썩어질 때 많은 생명의 열매를 맺는다는 주님의 교훈을 일깨워 준다.
박삼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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