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사람을 거짓되게 하는 매질

3406 2020. 12. 2. 10:18

황희 정승이 어느 하루 집에서 쉬게 되었다. 복잡한 국사를 떠나 모처럼 집에서 쉬는 지라 긴장이 풀려 깜박 오수에 빠졌다가 잠결에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누운 채로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니 선반 위에 쥐 두 마리가 무엇인가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유심히 보니 쥐들은 선반 위의 접시에서 배를 운반하고 있었다. 미물에 불과한 하찮은 쥐들이 협동하여 지혜롭게 배를 운반하는 것이 신기해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쥐들이 그 배를 가지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자 황희는 다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는지는 모르지만 밖에서 들려오는 계집종의 울음소리에 잠이 깨었다.

계집종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정경부인에게 매를 맞고 있었다.

“네 짓이 분명하렸다!” “흑흑. 아닙니다. 마님! 제가 그러지 않았사옵니다.” “그럼, 선반에 있던 배가 어디로 갔단 말이냐! 네 짓이 분명한데도 나를 속이고 있으니 바른말 할 때까지 치겠다.”

정경부인의 매질은 계속 되었다. 계집종은 울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정경부인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계집종이 고통스럽게 매질을 당하자 황희는 진실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때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님, 제가 죽을죄를 졌습니다. 배는 제가 먹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흑흑흑...”

그 소리를 들은 황희는 무엇인가로 뒤통수를 세차게 맞은 듯 한 기분이 되었다.

황희는 그 길로 입궐하여 세종임금을 배알하고 그 신기한 사건을 아뢰었다. 그리고 나서 갇혀 있는 죄인들 중에 죄진 증거가 확실하지 않은 자들을 방면해 줄 것을 주청했다. 그러자 세종은 즉시 죄수들 중에 증거가 확실하지 않은 사람들을 방면했다.

 

고문으로 숨기고 있는 사실을 알아낼 수도 있지만 하지 않은 잘못을 했다고 누명을 씌우기도 한다. 고문 중에 가장 흔한 게 매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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